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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발
모든 건
거기를 가기 위해서였어
그게
그게 시작이었어
민재야, 움직이지 마!
로프
빨리 로프 잡아!
전부 당겨!
응? 누가 캐럴 틀었나 보네
- 들리세요?
아직 화면 안 뜨네요
- 어이, 유진 씨
안녕하세요
- 지금 남극 한복판에서 -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거예요
이게 다 우리 인터넷 위성 기술 덕분 아닙니까
성민아, 아빠 보이니?
- 재경 선배 - 아, 예
선배만 인사하지 말고요
- 지금 보시는 분들 위해서
- 아, 뜨거워 - 탐험대 소개 좀 해주세요
- 예, 저는요
그, 이 팀에서 전자 장비하고 그, 비디오 장비를 담당하고 있는
서재경입니다
어, 원래 그, 직장은 동사무소에 다닙니다
- 어, 힘들어, 어
자, 우리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양근찬 대원입니다
간 죽이는구먼, 간 죽여
아니, 뭐가 죽입니까? 그게, 아이고
- 아, 저, 저거 - 우와
- 우리가 매일 먹는 건데요 - 맛있겠다, 어, 나도 줘
저거 특수 건조된 식량입니다
어, 물에 불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저거
- 아이고
이게 얼마나 테크닉이 거시기하게, 거
- 아
오늘 그, 크리스마스인데 뭐 좀 특별한 것 좀 준비했습니까?
- 이야, 오늘도 죽은 거야, 우리는
- 아, 김성훈 씨 - 네?
아, 우리 성훈 씨는요
지리산에서 오랫동안 구조대 활동을 했었고요
하, 국내에선 진짜 날리던 산악인이었는데
비행기 타본 건 이번이 처음이죠, 아마?
아이, 정말 쪽팔리게
그래도 나 없으면 본부랑 통신이고 뭐고 없어요
예, 저랑 매일 대화하는 대원이세요
오늘은 군대 얘기 안 하시네요?
아이, 참 거 왜 나만 갖고 그래?
- 대형사고 낸 인물은 따로 있는데
재경이 형, 나 나간다
어어? 아, 인터뷰 중에 어디 가십니까?
- 쪽팔리니까 그렇지
이야, 대낮 같죠?
근데 지금은 저녁 7시입니다
이게 남극이죠
6개월은 밤만 계속되고 6개월은 낮만 계속되고
저기 우리 부대장 이영민 씨가 보이네요
프로 알피니스트고요
세계 험한 산은 안 가본 곳이 없죠
그런데 지금 뭘 찍고 있는지 모르겠네
추운께 문 좀 닫으쇼잉
씨발, 이 넓은 대륙에서 오줌을 싸면 얼마나 싼다고
양놈들
협약은 지들끼리 만들어 가지고
- 자, 이건 저기 - 멋있다
대장님이 끄시요잉
- 자
아깐 아무것도 준비 안 한 것 같더니
야, 과일 빙수다, 야
이게 바로 남극 특제 빙하 케이크여
민재, 인마
너 뭐 잘한 게 있다고 숟가락을 들이미냐?
에이, 그만하쇼
여기 끝에 있는 눈은 수십 년도 더 된 거네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묻혀 있던…
1년에 5cm도 안 오는 눈으로 만들었응께
딴 데선 먹도 못해
올, 좀 아는데
기분이 이상한데?
이상해?
백 년짜리다
아, 차가워!
- 아, 차가, 차가, 차가워
아아, 이거 왜 안 나와, 이거?
아이씨
아이, 차가워
아, 에이, 뭐야!
- 정말!
영민아, 오늘 좌표가 어떻게 되나?
남위 78도 30분
동경 142도 23분입니다
이제 한 1,700km쯤 남았나?
아직 갈 길 멀다
GPS 정확히 확인했지?
기계는 거짓말 못 합니다
출발하기 전에 누가 그러더라
왜, 그런 질문들 많이 하잖아
그렇게 위험한 데 가는 게 당신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아니, 그럼 우리가 죽으러 가는 거냐고
응?
그 사람 되게 황당해하데
내가 대답했지
난 거기를 살기 위해서 간다
우리 같은 놈들은
가장 위험하고 불가능해 보여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을 때 살아있는 거다
이게 우리의 직업이고 일상이다
준비 기간 때문에
여기 오는 시점이 좀 늦었다
두 달 후면 태양은 져버리고
나하고 영민이 빼면 대부분 처음 모이는 사이고
이렇게 가끔씩 한 잔
위도 1도씩 넘어갈 때마다 한 잔씩 하자
그래서 이거 다 비우고 나면
우린 그땐
세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서 있을 거야, 응?
자
파이팅
파이팅!
대장님, 다음번엔 저한테도 기회 좀 주시죠
뭐, 내가 여지껏 사람 구해주면서 먹고살았는데, 뭐
아따 도달 불능점에 태극기 꽂고
돌아가서 우리 지은이한테 장가나 갈랍니다
지은인지 누군지 내 마누라 꼴 나겠구먼
이제 마누라 한숨 소리도 정말 지친다
이번 탐험 끝나고 나면
다신 안 해
이제 마누라하고 애들 곁에 있어야지
이 생활 20년에 남극 도달 불능점
멋진 마무리 아니야?
- 그렇지
라이터 돌이 빠진 거 같은데
- 아이씨!
아, 민재야, 근찬아, 좀 찾아봐라
- 아, 찾아봐 - 조그마한 걸 어디서 찾아
성훈아, 좀 찾아봐
12월 31일 탐험 17일째
지금 시간은 밤 11시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 있는 한밤중이라니
그래서인지 낮도 밤도 계속되는 것만 같다
매일 걷고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해서 그런지
누군가 내일이 설날이라고 떡국 얘기를 했지만
아무것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떡국의 맛, 냄새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저 태양은 하루 종일 쨍쨍하게 내리쬐지만
조금도 따뜻하지 않다
그리고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
하지만 하늘을 보고 있을 땐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자꾸 저 새파란 하늘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우리 모두가 외계 혹성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저 위에 누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나만 그런 걸까?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표시 아닐까요?
그보단 뭔가를 묻어놓거나 그런 거 같은데
야, 막내 이건 뭐라고 쓴 거냐?
'안타틱 저널'?
남극 일기
전에 왔던 누군가가 남기고 간 거 같은데
봐봐
'영국 탐험대 1922년'
그러면 이것이 시방 80년도 넘은 것이여?
80년이 아니라
수천 년 전에 죽은 동물도
형체만은 그대로 보존되는 곳이 남극이야
어떤 바이러스도 없는
인류의 천연 냉동고가 바로 여기라고
김민재
예
가져
자, 출발하자
흠, 우리 성훈 선배는 영민 선배를 왜 이렇게 미워할까?
야 그냥 딱 봐도 그냥
거, 안 맞는 사람이 있잖아
그럼 누군데요? 얘기 좀 해봐요
김민재다, 민재
정말?
그 일기장, 응?
그게 영국 같은 데서 경매 같은 거에서 팔면
돈 꽤나 받겠다 싶었거든
근데 그걸 그 민재 그 신삥 새끼한테 주냐, 씨발
열 꽤나 받으셨겠네요
그래도 뭐 최 대장님답다, 멋있다
- 멋있기는
아아, 아, 현재 시각 십구 시 오십이 분
전체 장비 완전 점검 상태 이상 무
- 전 대원 부상 질병 없고
이상 김성훈이었습니다, 오버
알겠습니다, 오버
건강 유의하십시오, 오버
뭣 하냐?
80년 전에 뭐 재밌는 이슈라도 있냐?
우리랑 똑같죠, 뭐
'남극 멋지다, 춥다 해내야 된다'
다 알아, 이 새끼야
어차피 일기는 처음 부분만 좀 알아볼 만하고요
나머지는 거의 눌어붙고 해지고 해서
뭐, 그냥 그림이나 보는 거죠, 뭐
그림?
그럼 이게 그림일기냐?
보세요
이 팀도 우리랑 똑같이 여섯 명이에요
- 신기하죠? - 어
근데 형
이 그림 뭐 같아요?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
뭐…
얼굴이 좀 아니었나 보지
이거 꼭
우리 대장님 뒷모습 같지 않아요?
야, 인마
방한복 입으면 다 비슷비슷해야
아예 눈에 뵈는 건 전부 대장님이여
으이구
저희 부모님이
나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큰 고모님 집에 살았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잘해주고 신경 많이 써주고 해도
괜히 방황하고
근데
TV에서 우리 대장님 봤었어요
그게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등반하신 다음이었는데
기자가 정상 정복 했을 때 기분을 물어보니까
그냥 스윽
웃으시는 거예요
아무 말도 없이
궁금했어요
'저 사람은 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이번 탐험 같이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몰라요 대장님한테
넌 몰라, 야 니가 외국에 나가있…
아니여
- 응? - 아니여
- 뭐예요? - 아니여, 내가 괜한 말 꺼낸 겨
응?
다 눌어붙었담서
뭐이 좀 있냐?
예
중간 부분인데 82도를 넘어가고 있어요
근데 형, 좀 이상해요
뭣이?
출발할 땐 분명 여섯 명이었는데
지금은 다섯 명
한 명이 비잖아요?
아야, 한 놈은 이거 그리고 있었을 것 아니냐
- 그런가?
근데 형
이 사람들 다 어떻게 됐을까?
- 뭐, 영국 탐험대니께
여왕한테 훈장도 받고 트로피도 받고, 뭐 그랬겄제
누구처럼 그런 쇠붙이만 잔뜩 받으면 뭐 하냐?
장식장에 훈장, 기념패, 트로피 이런 거 졸라 쌓였으면 뭐 하냐고
집 안이 텅텅 비었는데
조또…
끝도 없이 걷는구먼
- 끝도 없이
응?
자, 1분 내로 대형 맞춰요
다시 출발합니다
부대장님
거, 다들 자는데 그 짜증 나는 노래 좀 끄죠?
나 지금 이것 때문에 집중해야 되니까
잠깐만 좀 놔둬요
전부 자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 형님! - 재경 선배!
어찌 그라요, 형님!
- 나요, 나! - 놔
서재경, 서재경! 정신 차려, 서재경!
두들겨 패
민재야, 성훈아, 텐트부터 치고
영민이는 나 따라와!
선배, 재경 선배
정신 바싹 챙겨야겄다
까딱하다간 뭔 일 나겄다
씨발
이게 말로만 듣던 화이트 아웃이군
재경이 형 상태로 봐선
하루에 20km 가기도 힘들겠어요
식량이 얼마나 남았지?
아직 35일분 여유는 있지만
더 지체되면…
나도 모르겠어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어
갑자기 힘이 쫙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게…
그다음에는요?
- 몰라, 생각 안 나
생각나는 건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
내일부터 재경이 짐 최대한 줄여
나머지는 대원들이 나눠서 진다
오늘 저녁 600g 늘려서 배식하고 각자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내일 10시부터 움직이자
식사 준비들 해라
대장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밖에
뭐 하시러?
그냥 계시겠지, 뭐
묵어요
못 먹겠다
자꾸 넘어올라 그래
아이고…
- 재경 선배
꼭 감기 걸린 사람 같지 않아요?
남극엔 바이러스가 없는데
괜찮냐?
어때, 상태가?
모르겠어요
걸어야 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질 않아요
고도 때문에 그런지 머리도 깨질 거 같고
그래도 어떡해
가야지
글쎄
아는데
숨이 너무 막혀서…
지금 일정 알잖아
정해진 날짜 있는 거고 정해진 보급품 있는 거고
그거에 맞게 딱딱 가줘야 다음 일정 차질 없는 거고
여유란 자체가 없단 말이야
그냥 좀 쉬면 안 됩니까?
그건 안 되지
지금도 많이 늦었어
이렇게 가면 어려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못 걷겠어요
차라리 내가 없어지든지
비행기라도 불러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라고요
너 언젠가 얘기했지
이번이 네 마지막 탐험이 될 거라고
그 생각 하고 버텨봐
대장
도형이 형
출발하자
- 재경 선배는요?
재경이 상태 맞춰주다 보면 모두 지쳐
92년 로체 등반 때도 저러다 결국 해냈어
그건 그렇고
누가 끝에 서서 재경이 상태 확인하면서 올 거야?
김민재
네가 끝에 서
재경이 상태 확인하면서 와 할 수 있지?
예
그리고
절대 확인한답시고 드러내 놓고 뒤돌아보지 마
- 자존심 상하니까
대장
민재야, 근찬아
야, 이 개새끼들아
재경이는?
그러니까
뒤에
뒤에요
- 양근찬, 빨리 텐트 쳐 - 예
성훈 씨는 나랑 같이 가지
여기서 아까 출발한 데까지 얼마나 멀죠?
다시 출발한 시간이 두 시간쯤 전이니까
멀어 봤자 10km도 안 될 것 같긴 한데
재경 선배
중간 어딘가에서 잘 버티고 있을 거예요
가족들 생각하시면서
가족
우린 대원들이 다 가족이야
대장님은 가족사진 같은 거 안 가져오셨어요?
가족사진 많이 찍었잖아
난 니들이 다 내 새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
넌 내 아들 같고 재경이는 큰 동생 같고
그 오래된 카라비나
어디서 받으신 거예요?
재경이 형!
- 재경이 형! - 재경 선배!
넓게 퍼져, 최대한 넓게!
이상한 게 발견되면 바로 연막탄 쏘고!
스키 자국 하나 안 보이네
재경이 형!
여기, 여기여라우!
영국 탐험대
1922년?
"1922년 영국 탐험대"
어쩐지 그 일기장인가 뭔가 느낌이 졸라 구리다 했어
80년 전에 죽은 것이 뭣한데 여기서 나타나?
눈 둔덕은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거니까
깊숙이 묻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지
계속 그렇게 여유 잡으면서 설명만 하고 있을 겁니까?
지금 재경이 형 조난당한 거라고, 예?
그래서 어쩌자고?
김민재, 재경이 라이터 발견한 데가 어디야?
저쪽, 서북쪽 저 밑
씨발, 재경이 형도 저렇게 돼 있는 거 아냐?
- '두 유 카피 오버'
여기는 한국원정대 여기는 한국원정대
베이스캠프, 감도 양호하면 응답하라, 오버
'디스 이즈 K1' 베이스캠프 응답하라, 오버
'디스 이즈 K1' 베이스캠프 응답하라, 오버!
여기서 남동쪽으로 150km 정도 가면
노르웨이 기지가 있어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진로를 수정해서 구조 요청을 하러 가는 거죠
150km면 일주일도 더 걸리겠구마잉
죽자 사자 가면 닷새 안에 갈 수도 있어
남동쪽이면 난빙대인데
무선이 안 되는 건 악천후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인 거 같고
그래서요 마냥 기다리자고?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데
방향을 트는 게 그렇게 큰 문제예요?
만약에 악천후가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면
그땐 어떡할 건데?
여기 날씨 몰라?
대장님, 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포기는 안 돼
아니,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무선도 안 되고 날씨까지 지랄 같은데
한 팀으로 이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안 된다는 거야
성훈아
우리가 재경이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잖아
지금 코스를 틀어서 구조 요청을 하자고?
그래서 이 탐험을 포기해?
그건 재경이도 원치 않을 거다
대장님
지금 재경이 형은 어딘지도 모르는
남극 한복판에서 죽어가고 있다고요
재경이를 그렇게 위한다면
아까 왜 민재 대신 네가 나서지 않았어?
훨씬 경험 많은 네가 재경이 상태 확인하면서 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어떤 위대한 등반이나 탐험에도 다 희생은 따라왔어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계속 이렇게 밀어붙이다가는
전부 아까 그 눈깔 없는 영국 놈 신세가 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그건 희생이 아니라 개죽음이라고요
40일 넘게 1,000km를 왔다
이제 이 탐험은 그렇게 간단하게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가 성공하면 재경이도…
노르웨이 기지로 가려면 너 혼자 가
다른 대원들은?
전
대장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재경 선배 구조는 베이스캠프 쪽에서 추진하는 게
기동력 면이나 시간 면에서 더 효율적일 거 같습니다
근찬이 생각은 어때?
가는 것이 낫지라
여꺼지 왔는디
근찬이하고 민재 현재 남아있는 물품 정확히 파악해
영민이는 내일 일어나자마자 풍향, 풍속, 빠른 진로를 체크하고
베이스캠프 모르스 송신은…
김민재, 너는?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근데, 응?
형
그만하세요
이 새끼가 진짜…
남극의 흰색이
날 마비시킨 걸까?
그 순간 난
그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주일 치 식량과 연료
캠코더와 부속품
기호 식품 약간을 빼면 별다른 거 없습니다
기호 식품은 뭣이다?
담배
이제 남은 담배는 각자 호주머니에 든 것뿐입니다
씨…
아빠
여기는 베이스캠프
K1 응답하라, 오버, K1
여기는 베이스캠프
여기는 베이스캠프
- K1
어이, 부대장님
여기 놀러 왔어요?
그렇게 한가해요?
동료가 조난당하건 말건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는다
프로의 세계는 다 그렇게 냉정한가 보죠?
이야, 그렇게 싸한 데서
왜 제 눈앞도 못 보는 인간한테는…
'디스 이즈 K1 두 유 카피 오버'
'디스 이즈 K1, 두 유 카피 오버'
조까 기분이 거시기하다
어째 무선이 안 될까잉?
성훈 선배
취침 직전까지 모르스 송신에 매달려 있었어요
근데 내 일기장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아야 어디 한구석에 찡겨 있겄제
그런 것을 누가 가져갔겄냐
뭐, 뭐 인마!
영민아, 출발 대형 맞춰
예
부대장님, 오늘은 내가 선두에 서면 안 될까?
왜?
선배
선두 정지
지금 누가 선두에 서라고 그랬어?
방향이나 제대로 알고 가는 거야?
아니, 그럼 내가 일부러 방향을 잘못 잡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당신 생각은 나도 모르지
가고 싶은 데가 도달 불능점은 아닌 것 같으니까
- 아따, 방향은 맞구먼
선두는 조까 젊은 우리가 설 텡께
민재야, 뭣 허냐! 빨랑 뒤에 붙어
양근찬 정지
선두 정지!
지금 부대장 말이 말로 안 들려?
내가 선두에 설게, 그편이 낫겠어
뭐, 그러든지, 씨발
야, 이영민!
당신이 사람이야?
지금 어떻게 그 노랫소리가 나와, 어?
그만해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그래?
그럼 씨발 이 상황에서 휘파람이나 불어대는 거
그거야말로 경거망동 아니야?
탐험가고 나발이고 사람부터 돼야 될 거 아니야!
당신처럼 개기기만 한다고 다 사람이고 탐험가야?
아마추어 티 내지 마
이런 재수 없는!
- 부대장님!
아따, 그만들 좀 하쇼!
- 성훈 선배!
전부 가만히 있어!
이영민, 절대 움직이지 마
잘못하면 주변 전체가 무너져 내려
김민재, 양근찬 조심해서 뒤로 빠져
빨리
씨발, 빨리빨리 좀 내려줘
떨어질 것 같단 말이야!
어디 다친 덴 없나?
씨,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허리…
이게 뭐야? 씨발
김민재, 양근찬!
자세 낮춰!
민재야, 더 내 쪽으로!
뛰어!
아니요
아직 아무 데도 탐험대 위치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잠깐만요
재경 선배 노트북에서 신호가 나…
잠깐만요
살려주세요
이게 뭐야?
사람이 눈으로 본 건
다 믿을 수 있는 건가요?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어떤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꼭 뭐에 홀린 것처럼
착각을 할 수도 있는 거겠죠?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야
전부 박살 났어
무선 통신기 아르고 모르스 송신기 모두
그럼 더 빨리 도달 불능점에 가면 되겠네
무선이나 모르스 송신이 안 되면
BC에선 당연히 우리가 조난당한 줄 알고 있을 거야
그럼 마지막 송신 지점에 구조 헬기를 보내겠지
하지만 그 지점은 한참 전이고
신호가 정확하게 갔을 거란 확신도 없어
그렇다고 무작정 헬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그보단 예정된 기간 안에
도달 불능점에 가는 게 가장 확실하게 사는 방법이야
대장님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여
지가 아무리 뭔 생각이 없어 보여도
시방, 대원이 둘이나…
이건 아니여
바로 이 땅에서 수많은 탐험가들이 죽어갔어
저 흰색
사람들은 저걸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저 밑에 얼마나 많은 피가 고여 있는지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그래 봤자 눈과 얼음이야
달려들면 녹여서 마셔버리면 돼
이번 탐험에 이런 날씨 본 적 있어?
이건 남극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자, 빨리 털어내자고
그래
재경이는 벌써 BC팀에 구조돼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거야
성훈이…
성훈이
성훈이는 니들도 알잖아
그건 그냥 사고였다
뭐, 이 정도 일도 안 일어나면 돌아가서 할 얘기도 없잖아?
잠깐만요
지금 이 소리 안 들리세요?
무슨 노랫소리…
목표로 가는 가장 빠른 좌표는 이 방향뿐입니다
저 듀피크산을 통과하는
평지를 돌아가는 거보다
20, 30km는 단축되겠지만
겨우 500m짜리 언덕이야
30km면 하루 이상 벌 수 있어
하지만 저 산을 넘어 가는 건 무리입니다
썰매를 일일이 정상까지 옮겨야 되는데
- 지금 우리 상태로는… - 전원 출발 준비해
전부 아이젠으로 갈아 신고 두 명씩 로프로 묶도록
저녁까지 정상에 간다
김민재, 양근찬
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왜 그러시는 거예요?
너무 무거워
무게를 줄여야 돼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남극의 이상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건 무슨 현상이죠?
나도 모르겠어
무거워
대장님은 어디 계세요?
밖에
거기서 뭐 하고 계세요?
그냥 계시겠지, 뭐
그냥 계시겠지, 뭐
대장님은 맨날 그냥 계시지라
우리 이런 얘기 언제 하지 않았나?
일주일 전이었나?
한 달 전인가?
아니
1년 전인가?
그때도 대장은 그냥 있었어
애가 자살해서 영안실에 있을 때도
자살이요?
아빠는 산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15층 아파트에서
열 살짜리 꼬마가
거기서 떨어졌는데도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대장은 그냥 있었어
그날 애가 산장까지 전화해서
혼자 있기 무섭다고 아빠를 찾았대
근데 대장은
애가 강해져야 된다면서
오히려 혼을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지
그렁께 시방, 위대한 탐험가제
전번에 남극 실패하고 빚에다가
애는 그렇게 되고 이혼 당해뿔고
나 같은 놈은 암만해도…
전화를 끊기 전에 애가 그랬대
자꾸 뭐가 보인다고
새하얀 사람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고
대장님이 거기 계셨다면
그런 일은 안 생겼을까요?
그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지켜주길 바란 걸까요?
고소병이까이
자꾸 헛것을 본갑소
똑같은 지점이야
못해도 150km 이상은 걸었을 텐데
일주일 전하고 똑같은 데로 되돌아왔다고
좌표상으로는 분명히 다른 곳이에요
우리 분명히 산을 넘어왔잖아요
아니여
기계가 언 것이여
저기, 온도가 너무 낮아서 그런 것잉께
침낭으로 싸갖고 보듬고 있으면 녹겄제
- 호들갑 떨지 마
이제 이 땅에 처음 왔던 사람들 방법으로 가면 돼
백 년 전에도 지도와 나침반 하나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었어
일주일 전과 똑같은 곳으로 되돌아왔다면
다시 출발하면 그뿐이야
대장님, 이제
이제 한계점에 온 거 같습니다
ELT를 꺼내시죠
그건 안 돼
이젠 진짜 ELT뿐입니다
그걸 켜면 어느 비행기든 구조 신호가 가잖아요
제발 부탁입니다
ELT는 정말 결정적일 때 꺼내는 거야
부대장
지금이 그런 비상 상황이라고 생각해?
거의 다 왔어
길어봐야 일주일이다
김성훈의 말이 맞았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ELT를 안 꺼내신다면 대장님 말씀 따르지 않겠습니다
이영민
그걸 켜고 안 켜고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
넌 탐험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든 날 도와야 되는 거 몰라?
전 지금
탐험대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탐험대를 돕는다
너 벌써 잊었구나?
왜 우리가 남극에 다시 왔는지
이제
잊어버려
지난 일은 다 잊으라고 있는 거니까
근데 이상하지?
- 난 이 풍경이 너무 낯이 익어
이 바람, 이 공기 이 햇빛, 전부 다
우리 태어나기 전부터 여기 산 거 같지 않아?
니들은 안 그래?
그래
이 냄새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났어
점점 더 강해져
이제는 세상 그 어느 향기보다 강해
분명히 이건 거기서부터 불어오는 걸 거야
우리가 도착하면
남극이 새하얀 다리를 벌리고
반갑게 맞아줄 거야
도달 불능점에 갈 수 있다면
남극을 이길 수만 있다면
앞으로 어떤 기적도 만들 수 있어
그게 기적이 아니라
저주라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거기를 간다는 게 무슨 의미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거
전 이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맞서지 않으면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다들 끝까지 버텼던 것뿐이라고요
이제 보이는 게 없으니까 무서운 것도 없지?
내가 꼭…
내가 꼭…
양근찬, 여기서 퍼지면 안 돼
더 이상은 못 가겄소
시방, 텐트 치고 비상조치를 취해야지
이러다 민재도 부대장도 다 가버리지라
양근찬, 일어나 일어나!
이건 또 뭐야
어떡해
약해빠진 새끼
추워
아, 추워
아, 여기가 어디죠?
성훈 선배가 얘기했던
그 노르웨이 기지인가요?
형, 미쳤어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나! 빨리 안으로 들어와요, 형!
텐트가…
텐, 텐트가…
이, 이, 이제 대장 옆엔 못 가겄어
나 이제 도망갈란다
집으로야
민재야
대장, 대장 짐 안에 있는 거, 그거
누, 누르면 구조 비행기 온다는 거, 그거
니랑 내랑 훔쳐불자
응? 민재야
ELT 훔치면
ELT 훔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 그래야 사는 겨
그, 그, 그걸 눌러야 사는 겨
형, 나도 정말 미쳐버리겠어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면 대장 말대로 다 우연이고 사고일 수도 있잖아
나 아직 대장을 믿고 싶어
닌 내 편이 아니여
대장 편이여
그게 무슨 소리야, 형
형이 대장을 못 믿겠다면
우리 앞에 난 스키 자국
그건 믿을 수 있잖아, 어?
정신 차려, 형!
어려워
어렵다고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마
우린 어려워
다 죽는다고
아이, 씨발!
누가 죽는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난 안 죽는당께
대장은 목표를 포기 안 해
우리가 도달 불능점에 안 가고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또 모르지
지금이라도 ELT를 뺏고 대장을 막을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지도
내가 그러자고 그러잖여, 어?
아이, 그럼 될 거 아니여!
눈도 제대로 안 보이는 내가
대장이라면 죽고 못 사는 민재가
양근찬
네가 할 수 있어?
내가 네 상태 모를 거 같아?
난 봤어
봤다고
자, 다들 힘내야지
부대장님
영민 선배
영민 선배, 어디 계세요?
영민 선배!
뭐, 뭣 허요?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있으면 어떡하냐?
이대로 놔두면 온몸에 썩은 기운이 다 퍼질 텐데
놔두시오
난 약한 새끼가 아니여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한당께
니들은 왜 나를 못 믿지?
아버지 말을 안 듣는 새끼들이 잘되는 거 봤나?
그라믄
신호를…
구, 구조 신호를…
그건 인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이제부터 아무런 고통도 없을 거야
영민 선배
영민 선배, 안에 계세요?
살려주세요
안 돼
안 돼!
부대장님, 부대장님!
안 돼, 안 된다고요!
부대장님!
- 우리도
저렇게
저렇게 될 거야
그딴소리 하지 마
그딴소리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씨발놈아!
어떡해야 되지?
어떡해야 되지?
안 움직여
대장이 배터리를
다른 곳에 숨겼어
머리가 빙빙 돈다
부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부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부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부대장님
모든 게 희미하게 보이니까
마음이 편해져
면도하고 싶다
부대장님
제가 대장한테 필요한 거 다 뺏을게요, 예?
네가 대장한테 뺏을 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네가 대장한테 모든 걸 뺏길걸?
근데
왜 성훈이 줄을 놔버렸을까?
이해가 안 돼
정말 그 정도 인간은 아니었는데
남극이
대장을 미치게 만드는 거야
'노 폴'
'오브 인액세서빌리티'
'도달 불능점은'
'없다'
아…
이건
거기 갔을 때 마저 마시기로 한 건데
- 문 열어요!
- 대장님, 문 열어요!
- 근찬이 형!
아, 뭐 하는 거야, 지금!
부대장님이, 영민이 형이!
아, 뭐 하는 거야, 지금!
어, 민재 왔구나
응, 얘 응급조치 내가 했어
근데 어쩌지, 이거
다리를 잘라놨더니
이제 같이 걸을 수가 없네
저기, 민재야
넌 배짱을 보여주는구나
그래도 애비를 패는 새끼는 개새끼지?
아버지? 당신이 무슨 아버지야?
자식새끼 다 죽이는 아버지가 무슨 아버지냐고!
내가 언제 새끼를 죽였다는 거야, 어?
크레바스에 빠진 놈을 구해준 게
누구야, 이 새끼야?
너같이 젖비린내 나는 새끼가 뭘 안다고 씨불이는 거야?
네가 죽음이 뭔 줄 알아?
네가 고통이 뭔 줄 알아?
- 어?
왜 하나같이 못 이겨내는 건데!
한번 가기로 하고 한번 하기로 했으면
죽기 직전까지 싸워봐야 되는 거 아니야?
난 죽기 싫어 난 죽기 싫어
난 죽기 싫다고!
제발 밀어붙이지 마!
할 수 없는 건 그냥 할 수 없는 거야!
거기 간다고 죽은 형들이 돌아와?
거기 간다고 죽은 당신 아들이 돌아오냐고!
도달 불능점 같은 건 없어
그게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받아줄 리 없단 말이야!
모르겠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직 해가 있다는 것
그래서 밤이 오려면
며칠의 여유가 있다는 것뿐이다
지금의 마지막 희망은
오직 그곳에 가는 길뿐이다
그리고 대장은
모르겠다
남극이 그를
영원히 데려간 것일까?
제발
제발…
아!
남위 82도 08분
동경 54도
58분
그래
- 그래요
여기예요
도대체
도대체 이게 뭐예요?
그걸 뽑아버린다고
여기가 굉장한 곳이 되는 줄 알아요?
여긴 그냥
한 점
땅에 찍힌 한 점일 뿐이라고요!
난 멈출 수가 없어
가야 돼
가야 돼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고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이어야만 돼
난…
난 그런 데밖에 갈 수가 없거든
여기는
여긴 날 받아주는 곳인 줄 알았어
여긴
김민재
너는
넌 날 멈추게 할 줄 알았다
네가 날 멈춰줘야지
내가
내가 이렇게 춥고
무서워서 미쳐가는데
넌
넌 나를 멈춰줬어야지
'디스 이즈 K1 두 유 카피 오버'
'디스 이즈 K1, 두 유 카피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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