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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불변의 역적은
지금 용상에 앉아 있는 수양이다!
전하를 능멸하고
사직을 어지럽힌 천하의 간신 한명회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
한명회 이놈!
역모를 일으켜
전하의 보위를 찬탈한 네놈들을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상왕 전하
드셔야 하옵니다
상을
물려라
상왕 전하
드셔야 하옵니다
물리라 하였다
드셔야 하옵니다, 전하
물리란 말이다!
상왕 전하
도승지 한명회 왔사옵니다
상왕 전하
신 한명회이옵니다
안으로
드시오
벌써 이틀째라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상을 물리시는 겁니까?
이제
내 차례라 오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이제 내가
저들처럼 비명을 질러야 할 차례냐는 말입니다
상왕 몰래 역모를 꾸미려 한 대역죄인들이오니
마땅히 비명을 질러야 할 자들이옵니다
그리고 상왕께선 죄가 없으시온데
어찌 비명을 지르신단 말입니까?
저들이 꾸미던 역모를 알지도 못하셨고
설령 안다고 한들
묵인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혹여
아니 그렇습니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빨리빨리 좀 쏴
지금
- 아, 아이씨 - 아
간다, 간다
아, 진짜!
- 노루 갔어! - 귓구녕에다 대고 진짜
빨리 쫓아가!
어휴 화살 던져도 맞혔겠다
어디로 갔어?
니들은 왜 만나면 싸우냐?
아이씨
야, 흩, 흩어져!
흩어져
어휴, 씨
어휴!
좀 조용히 하라니까
내 얘기는 아주 귓등으로도 안 들어, 씨
촌장에 대한 존경심 눈곱만큼도 없어, 아주
어휴
촌장!
어디 있는 거야!
촌장!
- 어디 또 짱박혀 가지고 - 으휴, 씨
저거 왜 저러는 거지?
아이고
어?
왕이다
아유, 씨
사람 살려!
아이, 저, 씨 거기 왜 드러누워 있어!
좀 자게?
에이, 젠장 할
아이, 남들은 노루 잡느라고 지랄발광을 떨고 있는데
저, 저, 처자빠져 자고 있는 거 봐, 저거, 저
아니, 아유, 아유, 이걸
어, 그래
그, 어릴 적부터 잠이 많았어
다들 가자고
호, 호랭, 호랭이가
호랭이가...
쉬세요, 아부지
산에서 자빠져 자고 지랄이야
나 도와줘
이씨
나 좀
나
아
아
아이, 저, 어르신
어르신
여기가 어디야?
응?
저게 진짜인가?
와
쌀밥이네
에?
오
내가 죽긴 죽었나 보네
이렇게 극락에를 다 와 보고, 어?
오
어, 이게
이거 진짜네
여, 깨어났구먼!
깨어났어
아이, 골짜기 밑에 뻗어 있더니만 다행이구려!
아, 예, 예, 어
근데 면상이 못 보던 면상인데
어디서 왔소?
아, 예, 저, 저는 저 광천골에서 왔습니다
광천골? 광천골?
근데 여기는 마을 이름이 어떻게...
여기 노루골이오
아, 노루골이 어디더라?
어쩌다 여기까지 왔소?
아이, 예 제가 노루 사냥을 하려고
- 이렇게 해 갖고 쫙... - 노루를 사냥을
- 해? - 예
노루를 왜 사냥을 하지?
아이 당연히 잡아서 먹으려고
- 노루를 잡아서 먹는다고? - 그렇죠
노루 그 누린내 나는 거를
그거를, 그거를 잡아서 먹는다고?
- 아, 옛날에야 그걸 먹었지 - 아이고
저, 저희는 그것도 없어서 못 먹습니다
아, 근데 마을에 뭐 큰 경사가 있으신가
이렇게 잔치를 크게 하십니까?
아, 오늘이 우리 아들내미 귀빠진 날이라서
아니, 애 생일이라고 이렇게 잔치를 하신다고?
뭐 소박하게 차려 봤소
이 새끼가 어떤 새끼길래 이렇게 크게 잔치를?
아이, 좋은 날인데 같이 한잔하시오, 어?
고기도 좀 자시고, 어?
아휴, 아이고 제가 그,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노루 아니오
예
아휴, 봐 손으로 먹는다
아, 그, 제가, 제가 그, 급했나 봅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갖고 그냥 아사 직전인데
아니, 여긴 어떻게 이렇게 풍족하게 먹을 수가 있습니까?
응?
보아하니
무지랭이 같아서 내 귀띔 좀 해 주자면
어느 날 긴 수염의 노인네가
우리 마을에 왔소
형조 판서였소
인사 올리겠습니다
한양에서 떵떵거리던 양반이
이 첩첩산중 두메산골에
유배를 온 거지
그 양반이 살 집도 내어줘야 했고
오시, 유시경에 내어오고
사람을 보내어 수발을 들게...
없는 마을 살림에 매 끼니 밥상도 차려 줘야 했고
저것을 잡아 대령하라! 당장!
게다가 이 망할 놈의 양반이
아직도 지가 뭐 고관대작인 것마냥
마을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는데, 에휴, 씨
근데 어느 날부턴가
- 뭔가 오더라 이거야 - 매 끼니 육고기를 대령하라!
뭐가?
당나귀
- 당나귀? - 어
다, 당나귀? 어?
짐들을 한가득 실은 당나귀가
줄지어 노루골로 오더라는 거야
동래에서 온 녹용입니다
고기며 쌀이며 곶감에다가 비단까지
한양의 양반들이 촉이 좋잖아
형조 판서 이 양반이
곧 조정으로 복직될 거라는 걸 직감한 거지
근데 하도 심심하니까 이 양반이 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네?
그래서 까막눈이었던 마을 애들이 금세 '천자문'을 떼고
'논어', 공자, '맹자'
가르침을 제대로 받은 거지
그 뇌물 바친 양반들 촉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배가 끝난 대감은 다시 한양으로 올라갔고
똘똘한 애들 데려가서 공부를 시키더니
그놈들 중에 한 놈이 장원 급제를 한 거야
한마디로 마을에 금맥이 터진 거지
지화자!
금맥?
그래
그 금맥이 우리 광천골에서도 터질 수가 있다는 거지
어떻게요?
얼마 전 한양이 난리가 났잖아
왕을 쫓아내고 새로운 왕이 들어서서, 그치?
그러면은 귀양 갈 양반들이 막 쌔고 쌔었을 거 아니야
그중에 한 명이
여기 영월 땅으로 유배를 온다는 거야
얘기는 하지 말아, 어?
누가?
아, 뭐 엄청난 고관대작이겄죠, 어?
떡 벌어진 풍채에다가 그냥
큰 갓 쓰고 지긋한 수염을 쫙 기른 사람 아니겠어?
오면 뭐 해요? 또 노루골로 갈 텐데
아니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대감을 우리 광천골로 오게 해야지
그 양반부터 잘 모셔지게 되면은
그다음부터는 양반들이 그냥 굴비마냥 줄줄, 줄줄, 줄줄
아씨, 굴비, 아
- 맛있겠다 - 그지?
안 돼요, 쯧
아휴
양반들이 귀양 왔다고, 어?
뉘우치고 정신 차릴 것 같아요?
하이고, 허구한 날 술 취해 아녀자 희롱하고, 어?
이, 쪼끔이라도 배알 꼴리면 저, 저 관아에 일러바쳐
마을 사람들 경을 치게 만들고
그래, 맞아 유배 온 양반들, 어?
집 해 줘야지, 밥해 줘야지 수발들어야지
거기다가 뭐, 도망가나 안 가나 감시까지 해야 되지
양반들 잘못되기라도 해 봐
우리 마을 그냥 싹 다 불바다야, 그냥
이 나무가 호로록 다 타는 거야, 그냥
에이, 그럼 관둬, 그럼, 씨
- 아이... - 저, 저, 삐딱하기는 그냥
막동이 귀빠진 날 애 뭐 해 멕여, 어?
뭐, 뭐 먹일 거 없으니까 그냥 몇 대 때린 다음에
물 멕여 갖고 그냥 재울 거 아니야
아이...
근데 노루골에서는
애새끼 생일이라고 고깃국에다가 쌀밥에다가 그냥
다들 모여 갖고 그냥 배 뚜들기면서 먹는다니까
닭고기, 돼지고기 뭐 없는 게 없어
지 애새끼 생일날인데, 어?
아
하얀 쌀밥에서
씨발
김이 그냥 모락모락, 모락모락
어휴, 씨
밥이 아주 뽀얗고
기름이 그냥 좔좔좔좔
나 진짜 극락에 왔는 줄 알았다니까
막말로
우리 마지막으로
쌀밥 먹은 게 언제여, 어?
기억이나 나?
장가가는 날 한 번
마지막일 거다, 맞다, 맞다
한양에서 양반이 내려오면은 쪼끔은
처음엔 쪼끔은 힘들겠지 낯설고 그러니까
근데 그다음부터는
고기하고 쌀을 실은 그 당나귀가 맨날 줄을 서고
매일같이 고깃국에 쌀밥을 먹을 수 있다니까
아, 그것도, 아이, 쌍 배 터지게!
매일같이, 어?
저도
흰쌀밥
저도 먹어 보고 싶어요
딱 한 번만
나도
딱 한 번만? 아휴
아휴, 아휴
막동아
쌀밥 꼭 먹게 해 줄게
응
여, 광천이
아
아이, 광천 골짜기에서 여긴 어인 일로?
아이, 아이, 나 산 저기 산에서 왁 급하다 그래서
- 어? - 아이, 아는 사람이
학 됐다 그래서
아이, 근데 어인 일로?
아, 나는 여 관아에, 어
양반 하나 또 받으러
아, 양반 받, 아, 그러시군
- 아, 일행이신가? - 나?
저 씨발 놈
저 도둑놈 잡아라!
군수 나리!
아이고, 나리
- 나리 - 아이, 아이
- 나리, 나리 - 나리
저 잠시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리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쉿
제, 제가 그러면
조, 조, 조용히 말씀드리겠으니
나리는 듣기만 하십시오
아니, 제가 두 보 먼저 왔습니다, 제가, 예, 예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네가 먼저 얘기해
대신
쉿, 조용히, 조용히
알겠습니다
혹시 광천골 안쪽에 위치한 청령포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광천골은 뭐고 청령포는 또 뭐야?
보십시오
군수 나리도 모르니 얼마나 외진 곳이겠습니까
영월 땅 중에서도
저기 산골짜기에 있는 게 광천골이고
광천골 중에서도
저 안쪽에 있는 게 청령포입니다, 나리
그래서?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청령포가 최적의 유배지다라는 말씀을...
비켜라 이 쌍놈의 새끼야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월 땅의 유배지는 지금까지 쭉 노루골이었습니다
유배 오신 분들이 다 만족감을 표하시고
어떤 분들은 떠나기 싫다고 하셨는데
이제 와서 유배지를 바꾸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나리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예, 나리
- 쉿, 쉿, 쉿 - 예, 예, 예, 예
쉿, 쉿
알았어
유배지는
야, 그냥 노루골로 해
나리!
야, 이씨
야, 이
나리, 나리
나리, 제, 제 설명을 한 번만 들어 주십시오
아유 충분히 들었어, 가!
뭣들 하느냐 이놈을 당장 끌어내라
청령포에 대해서
-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 왜 이리 소란이냐
웬 미친 자가 소란을 피워
내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전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리
나리, 소인은 영월 전직 호장이었던
광천골 촌장 엄흥도이옵니다, 나리
뭣들 하느냐 이놈을 당장 끌어내지 않고!
멈춰라
엄흥도
- 예, 예, 예 - 그래
너는 왜 네 마을이 그리 유배지가 되길 원하는가?
아
어
오소리도 길을 잃고
너구리도 환장해 졸도하는 오지의 섬
육지 안의 섬
청령포, 예
여름에는 아주 끈적끈적해 갖고 습기가 엄청나고, 어?
새카만 산모기가 천지에다가
겨울에는 강가에 냉기가 삭 올라오고
절벽에선 한기가 삭 내려오고
사람이 살기엔 아주 그냥 죽을 맛인 곳입니다, 그곳이, 예
사람이 죄를 뉘우치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고 있는 소인도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이곳을 유배지로 지정한다
아이고, 아이고 아유, 감사합니다요
감사합니다요, 나리, 아유
감당할 수 있겠느냐?
누가 오든 말이다
아, 아이고, 그, 그러믄입죠
예, 물론이죠, 예
누가 오시든지 다 괜찮습니다요, 나리, 예
내 한 손엔 칼을
한 손엔 상을 들고 다시 너를 찾겠다
둘 중 무엇이 향할지는
너 하기에 달려 있다
예, 아주 명심하겠습니다요
예, 저 목숨 걸고
뭐든지 완벽하게 잘 해내겠습니다요
예, 나리
예
아이고
죄인 노산군은
전하의 교지를 받들라
작금에 상왕의 장인 송현수의 역모를
상왕이 인지하였음이 만천하에...
역모를 꾀한 성삼문, 박팽년 등의 대역죄인을
능지처참하고
그 역모에 가담한 죄로
금성 대군에게 유배형이 내려진 이후로도
크고 작은 반역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금에 상왕의 장인 송현수의 역모를
상왕이 인지하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에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봉하고
유형을 명하여 나라의 민심을 진정하게 하노라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하루 종일 거기 앉아 있을 거여?
저기 일을 못 하잖아, 일을
빨리 갖다줘야지, 기와를!
아유, 시끄러워
아이, 진짜, 진짜
한양에서 엄청난 대감이 오신다고
그러니까 한 치의 오차가 있으면 안 돼요
아유, 저, 물그릇이나 좀 갖다줘요
뭐? 이거?
예
아유, 저
야, 들었으면 좀 갖다줘라, 그냥!
어떻게 손 하나 까딱 안 하려고 하냐, 어?
빨리 갖다줘, 좀
으휴, 진짜 답답하네, 답답해
여, 여기
아휴 물 먹을 시간이 없다니까
지금 대감 오려면은 달포도 안 남았어요
손 하나가 귀한 시간이야
그럴 시간이 없다고 물 마실 시간이 없어요
에?
- 근데 할아버지 - 어
여기는 원래 뭐 하던 데예요?
아, 여기가 옛날에는 무당이 살았던 데야
- 무당? - 무섭지?
그러니까 앞으로 여기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
- 네 - 지껄여라, 아이, 뭐
아휴, 세월아, 네월아
어어, 아재 조심 아, 조, 아이, 아
아, 그, 조심하라니까요 어떡해요, 이거
- 야, 진짜! - 아휴
기와 한 장에 얼만데, 진짜
- 그리고 - 내려와
저런 어른이 되어서도 안 된다
- 내려와 - 네
내려와!
이씨
배소도 이제 착착 다 지어지고 있고
이제 대감만 오시면 되는데
어어, 아이, 대감님 벌써 오셨어요?
예, 이쪽으로 오세요 아아, 이쪽으로?
그, 그래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아, 이게 무슨 소리지?
아, 당나귀랑 같이 오셨구나, 아이고
아이고, 눈치도 좋으셔라
예, 예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아이, 당나귀 넌 거기 있어 들어오는 거 아니야
어, 거기 있어, 짐 내려놓고
아이, 대감님, 자, 자 이쪽으로
아, 깜...
으휴, 깜짝이야
저, 또, 또, 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 쓰잘데없이
저 활 갖고, 그냥
아, 태산아
너는, 어?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떼고 여덟 살 때 '소학' 떼고, 응?
열 살 때 '통감'을 공부하고
왜 총명함을 썩혀 그, 그런 데다가
그러지 말고
지금부터 늦지 않았으니깐 과거 시험 준비해
아부지
아이, 과거 시험이 어떤 건지는 아십니까?
- 뭐... - 예?
아, 제가 뭐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줄 아십니까?
아, 여기 이 두메산골에, 예?
'사서삼경'의 서책이 있어요?
아니면 가르침을 줄 스승이 있습니까?
어?
스승 있지
조만간 한양에서 양반이 내려오잖아
그것도 고관대작이
그 양반한테 공부도 배우고
그럼 너 과거 시험도 볼 수 있고
아, 또 알아?
그 양반한테 잘 보여 갖고 한양으로 올라가게 될지?
아, 양반이 우리를 도와준다고요?
그런 양반을 본 일이 있습니까?
- 아휴 - 그래서 뭐...
이렇게 해 놓은 거 보니까 또 그럴싸하네
다들 욕봤어들
어? 어
에헤이, 참
근데 누가 올까?
아우, 촌장님이 그렇게나 애를 쓰셨는데
- 괜찮은 양반이 오겄죠 - 아이고, 그래야지
아유,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 어?
요번에도 그냥 허탕이야
저 초장부터 재수 없게, 그, 그
아유
자, 자 다들 다 잘 들어, 어?
마을의 생사가 달린 일이야, 그지?
그러니까 경거망동하지 말고
양반이 뭐 행패를 부려도 그냥 웃고, 어?
그냥 조아리고 '예, 예' 하고, 어?
말이다, 말, 말
저쪽에, 저쪽에 누가 옵니다 저기, 저기에
- 왔다, 왔나 보다 - 촌장, 빨리
온 거 같다, 온 거 같다
금맥이 왔다, 금맥
웃어, 웃어, 웃어
웃어
웃어
예
강을 건널 것이 뗏목뿐이더냐?
아, 예, 맞습니다
나와 가마 여인은 뗏목으로
나머지는 헤엄을 쳐서 건넌다
- 예 - 아, 저, 예
아이씨
넌 뭐 하는 게냐?
씨
넌 뗏목을 움직여라
예
- 가마를 올려라 - 예
아, 어어
조심조심
하나, 둘
응?
- 수염이 없네 - 촌장!
준비됐어!
어!
땡겨!
자, 가자
영
차
- 영 - 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어허 밑으로 흐르잖아, 밑으로
- 영차, 영차 - 더 땡겨, 더, 더
- 영 - 차
영
저, 저, 왜 안 가?
- 무슨 일이냐? - 왜 그러는 거야?
이거 걸려 버렸네
자, 걸렸어!
더 세게 당겨 봐, 더 세게!
야, 뭣들 해
젠장 뭐가 걸린 거야?
그렇지
더!
더, 더, 더 세게
더 땡겨!
- 어떡해, 다 빠졌어 - 아이고, 어떡해
나리
전하!
나리
빨리 들어가 안 들어가고 뭐 하느냐?
괜찮으시옵니까?
아유, 나리, 나리
가만있어, 가만있어
가만있어
아, 뭐 해요? 빨리빨리
아니, 그 무작정 땡기는 게 아니라
이 밑으로 가로질러서 해야지 아휴, 참
자, 자, 자, 자, 자 태산아, 이리, 이리 넣어 봐라
- 이쪽이요? - 아니, 그나저나
아니, 긴 수염 그, 고관대작이 아니라
꼬질꼬질한 애가 왔잖아
그, 어떻게 된 거야, 어?
그러게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저 어린것을, 아유
어이, 촌장
저 어린 양반 이름은 알아?
노산이라고 합디다, 노산
뭐? 노산?
달포를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달포라니요?
노산이 자결이라도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 어린것이
아비도
신하도
궁궐도 없는 그곳에서
견디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흠
대감 말씀이 맞습니다 그려
하나 잊지 마시오
노산의 숙부이자 전하의 아우인
금성 대군이
노산 지척에 있다는 것을
대군마마
저희들은
대군마마와 함께할 것이옵니다
목숨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목숨을 바쳐 따르겠나이다
모두
고맙소
기침하셨습니까?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예, 보수주인 엄흥도입니다
아이고, 이거 첫날부터 얼마나 경황이 없으십니까
망할 놈의 뗏목이 그냥 바위에 걸리는 바람에
어
제가 장대로 버티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쯤
저 밑에 떠내려가 갖고 큰일 날 뻔했습니다, 예
예, 저, 기력을 차리시려면 아침부터 든든히 드셔야 됩니다
저,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준비해 줬으니까
- 저, 식기 전에 저... - 물러가라
예?
물러가라 하였다
물러가라고?
나리의 심기가 불편하니
그만 물러가시오
아니 내가 여기 보수주인이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관아에 보고하는 게 내 임무인데
아니, 뵙지도 않고 첫날부터...
물러가라 하시지 않소
네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그 밥상 들고 썩 꺼져라!
아, 얼른, 얼른 가
참 나
거, 성깔 있네
하이고, 참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썩 꺼져라!'
뭐, 뭐, 뭐? 네 이놈? 씨
아휴, 꼴에 양반이라고 어린놈의 새끼가
그냥 싸가지 없이, 그냥
어디 으른한테, 씨
어휴
그래
그냥 어떤 골질을 해도 그냥 웃자, 그래
웃고 그냥 '네, 예' 조아리고, 어?
그러자, 씨발
아이고, 씨
근데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대, 응?
오메
흠
그러다 볼따구니 터지겠소
오해하신 거요, 오해
오해
이게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여기서 이만한 쌀벌레가
오해입니다, 오해, 응?
- 군수 나리 - 어
군수 나리, 저
아니, 근데 군사들이 왜 물러나는 겁니까?
몰랐느냐?
아, 예, 저
이, 원래 유배지를 지키는 일은
군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보수주인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매달 초하루하고 보름에 잊지 말고 보고하고
사소한 것까지 죄 일러야 한다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논어"
"중용"
아이, 참 나
아참
자네들 들었는가?
상왕께서 영월 땅에 유배를 오셨다네
아이, 듣기야 들었지
그, 청령포인가 어디로 가셨다더만, 쯧
- 청령포? - 응
아이고
어? 어유
아유
- 어땠어요? - 뭐가?
음식은 입에 맞으신대요?
아이고
손도 안 대더라고
예?
- 뭐? 손도 안 대? - 어
아니, 우리도 못 먹어 가면서 해 준 밥상인데
나 참, 씨
아, 어디가 아프신가 보지
입맛이 없는 건지
아니, 입맛이 없을 수도 있나, 응?
아유, 이 귀한 밥을
뭐야, 이거?
이거 손도 안 댄 게 아닌데?
이거 누가 반은 벌써 파먹었는데?
어, 어, 어
저, 안 먹으니까 거기 시녀 있잖아 시녀가 먹더라고
그러다가 나한테 딱 걸렸지
근데 죽어도 안 먹었다는 거야
볼따구가 그냥 빵빵하니 터질 것 같은데도
참
그럼 이거는 우리 막동이 먹여도 되죠잉?
에이
우린 남는 거 안 버리니까
막동아
먹었어 저 인간이 먹었어, 어?
파먹은 게 저 인간 주둥이랑 딱 맞아
아유, 냅둬
어이, 광천이
어?
아이고, 여기까지 웬일이오?
에?
아이, 저, 우리 말로 합시다
저, 심정이야 이해하겠지만
그런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내 싸우러 온 게 아니오
예?
좋은 곡식만 먹여 키운 씨암탉이오
- 자, 받으시오 - 어?
자, 더덕 더덕도 드려야지, 다
자, 생더덕이오, 더덕
아, 이거 왜 저, 저한테 이거를...
아니, 화를 대신 가져가셨는데 뭐, 씨암탉이 아깝겠습니까?
- 어? 자 - 아이, 뭘 가져가요?
자, 요거는 우리 노루골의 자랑
- 노루궁뎅이버섯이오 - 아니
아, 이걸 왜 저, 저한테 주는...
정말
고맙소
참 나
미친놈들이 뭐, 뭐?
고맙다 그러면서 이걸 주고 간다, 응?
아부지
응
귀양 온 양반이 누군지 아십니까?
어, 알지, 노산
예, 그 노산이 누군지 아시냐고요
아, 안다고 노산이 노산이지 누구야
노산군 이홍위예요, 이홍위
얼마 전까지 이 나라의
왕이었던 사람이요
이 자식이 뭘 잘못 처먹었나
뭐? 왕?
왕
- 왕? - 왕!
감당할 수 있겠느냐?
누가 오든 말이다
전하
- 왕? - 왕?
그 어린것이 왕이었다고?
- 아이고 - 그렇대
가만있어 봐 왕이면 왕이잖아
아니, 와, 왕도 유배를 보내나?
상왕도 유배를 보냅니까?
이보게
그, 왕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노산이 왕이 됐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서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켜서 왕이 됐잖은가
그 바람에 따르던 신하들은 모두 죽임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당해서 이곳으로 유배를 온 거라네
- 에이그 - 근데 죽이면 죽였지
왕이었던 사람을 유배 보내진 않지
게다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도 많으니
머지않아 사약을 내릴 것이야
사, 사약?
사약 그거 먹으면 죽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응?
아니, 노산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도 그냥...
아유, 저 유배자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은
아이고
유배지에도 무슨 일이 생기겠네
노산군을 따르던 자들은요, 어르신
그냥 전부 산 채로 산 채로 사지가 찢겨 죽고
고문당해 죽었답니다
재물은 다 뺏기고
처자식들은 막동이, 애동이 뭐, 애들 다 갖다 팔아 버리고
아이고 이년 팔자야
아이, 어떡해요
내가 뭐랬어, 어?
이제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이게 다 저 촌장, 촌장 때문이야
뭐가 죽은 목숨이야, 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나불거리고 있어! 씨
내가 저 저, 저, 저, 한명회 대감한테
똑똑히 들었어
머지않아서 노산군을 한양으로 저, 복귀시킬 거라고
흥도, 참말이지?
아이, 저 아시잖아요
나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여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여
아유, 그렇겠지
- 그럼 그렇지 - 아유
- 아이, 뜬소문이야, 뜬소문 - 에이
설마
전하
전하
전하
전하
전하
- 신 성삼문이옵니다 - 박팽년이옵니다
- 하위지이옵니다 - 이개이옵니다
- 유성원이옵니다 - 유응부이옵니다
어찌하여 저희를 버리셨나이까?
전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오
내가 곧
그대들에게 가겠소
내가 뭐 큰 거 바랐어?
그냥 쌀밥 좀 먹으면서 살아 보자는 건데
내 새끼 공부 좀 시키면서 좀
사람답게 한번 좀 살아 보자는 건데
그 하고많은 양반들 중에
왜 하필 너 같은 놈을 내가 데려왔냐고!
내가 너 같은 놈 만나려고 그 사정사정해 가면서, 어?
그 꿈을 품어 가면서
내가 너 같은 화근덩어리 놈을...
어어
화근덩어리
거, 어디 있는 게냐, 이놈들?
아유, 저
아유
여, 여
오해입니다요, 오해, 저
아유, 그동안 제가 전하를 못 알아 뵙고선
아이, 아, 근데 야심한 밤에 여기에 어인 일로?
아휴
아, 그, 그 거긴 위험합니다, 거긴
거긴 낭, 낭, 낭떠러지입니다, 예?
뭐 하시는 겁니까?
예?
이리 나오십시오, 거기서
아, 안 돼
왜 이러시는 겁니까?
놓아라
제발
내 손을 놓아라
안 됩니다
나리가 죽으면
우리 마을이
다 죽습니다
참
아이고, 모르겠다
뭐?
아, 예
뭐라 하였느냐?
예,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저, 유, 유배자가
누가?
노산군이요
아이 어젯밤에 배소를 살피려고
육육봉에 올라갔는데
노산군이 막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 절벽에서? - 예
어, 어찌 됐느냐?
제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갖고 겨우 살려 냈습니다
저 아니었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습니다요
아휴
어제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알겠지?
예
그리고 너는 노산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예
저기
이건 뭐예요?
- 아유 - 굴비
뽀얀 흰쌀밥
이 귀한 것들은 어디서 나신 거예요?
아, 관아에서 내려온 거야
나리 드리라고
- 태산아 - 좋겠다, 나리는
이것 좀 니가 갖다드려야 되겠다
제가요?
아이, 촌장님이 관아에 볼일 있다고 대신 부탁했어
너는
누구냐?
광천골 촌장이자
보수주인 엄흥도의 아들
태산이라고 합니다
왜 안 가고 서 있느냐?
나리 드시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식사를 거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맛난 음식만 먹고 사는 귀하신 분들은
저희가 살려고 먹는 음식이
우습나 봅니다
무엄하다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손도 대지 않은 밥상을 다시 들고 가면
없어서 못 먹는 저들은
나리를 원망하고 화를 낼 법도 한데
되려 나리께서
어디가 아프신 건 아닌지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시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부터 합니다
그렇다면
네가 먹거라
부르셨습니까?
전해 주어라
무엇을...
잘 먹었다고
예
싹 말려야 돼 아주 그냥
아이, 다시 해 봐, 어?
여기
저 왔어요
어, 어, 어떻게 어떻게 머, 먹었어, 응?
아유, 다 비우셨네!
- 다 드셨다고? - 예
다 잡솼다고?
네
참 요상한 일이네
마을 사람들한테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이렇게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휴, 내가 고맙지
은근히 인간미가 있네, 인간미가
예, 인간미...
이런
저, 다음번엔 내가 갈게, 내가, 어?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금성 대군께서 나리께 보낸 서찰입니다
어찌하여 뜯지 않으시옵니까?
나리
두렵다
이 서찰의 내용도
나에게 보냈다는 사실도
그저
두렵다
저놈의 자식, 저
에휴
쯧
이보시오
여까지 웬일이유?
혹 오늘 노산군 나리 보셨습니까?
아니요
배소에 안 계시오?
예
관아에 심부름을 다녀오니 계시질 않습니다
근처 사방을 다 찾아 봐도
나리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쓰읍
아이, 그럼 그
놓아라
내 손을 놓아라
육시랄
간신히 살려 놨더니, 씨
금성 대군께서 나리께 보낸 서찰입니다
아휴
어휴!
그렇게 죽고 싶으시오?
무슨 소리냐?
지금 동네 사람들은
걱정돼서 찾느라 난리가 났는데
자기 생각만 해서 죽을 생각만 하고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으시오?
뭐라?
- 네 따위가 감히 나를! - 예, 예, 예!
내 따위가요, 내 따위가요!
네놈이 미친 게냐?
예, 미쳤지요!
미치지 않고 이러겠습니까요?
동네 사람 좀 배 좀 불리려고
내 새끼 좀 공부 좀 시키려고
간신히 모셔다 앉혀 놨더니
허구한 날 떨어져 죽을 생각만 하는데
내가 그럼 안 미치겠습니까요?
안 그렇소?
- 아유 - 네 이놈!
저기 계시네
뭐 하는 짓이냐?
아이, 저, 저, 저 위험하게, 저
아유
아휴
아이고, 세상에
괜찮으시옵니까?
그래
저, 저 왜 저러는 거야?
- 몰라 - 응?
아유, 어지러워
와, 왕이다
찾았잖아, 왕
아니요, 저기 왕 말고 저, 저기 왕
어, 왜, 왜, 왜?
어, 어, 어떡해
호, 호랭이
가, 가, 가만있어 가만있어
어, 어떻게 좀 해 봐
조, 조,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아이고, 사람 살려
막동 아버지, 어떻게 해요
호랭이는
한 명만 잡아먹으면
다른 사람은 건들지 않아
어, 어르신, 어르신 안 돼요
살 만큼 살았어
다들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나 간다
어딜, 어딜 가, 어딜 가?
태산아
태산, 산, 산아
야, 어이!
야, 어이
어이
야, 어이, 어이
네 이놈!
네 상대는
나다
아이고, 세상에
- 아이고, 나리 - 나리
- 세상에 - 나리, 나리
- 나리 - 아이고, 나리
호랭이가
- 노산에게? - 예!
아우, 야, 진짜 하마터면 아주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이고, 나 지금도 손이 떨리네
- 날 뻔하다니? - 예?
아이, 그럼 이번에도 네가 노산을 구했느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노산군이 저하고 마을 사람들을 다 구해 줬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거짓부렁, 씨
아유, 아이고 거짓부렁이 아닙니다
지, 진짜 다 사실입니다요
진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다 사실입니다
노산군이
노, 아니야, 노산군이
이렇게 해 갖고
싹
기지개를?
아니, 아니, 아니, 저 화, 활을, 활을
확 당기니까 그때 그냥 어흥
어흥, 노산군이?
아이, 아니!
아, 왜 노산군이 어흥을 해 호랑이가 어흥을 해야지, 씨
그러니까 노산이
'네 상대는 나다'
'나한테 덤벼라'
그것이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내가, 내가 보기엔 알아들은 거 같은데
말이 끝나자마자 막 가더니
어흥 하다가
화살로 삭, 착 쏘니까
슈슈슈슈슈슉
진짜 착
- 명중 - 명중, 정통으로
그러니까 호랑이가 저 절벽으로 떨어지고
노산은
대단하다
아이고
아이고 어제 그 난리를 쳤더니
숟가락도 무거워서 못 들겠네
근데 나리는 괜찮으실라나 모르겠네
아휴, 그러게요, 쯧
여기 오셔서 이 끼니도 제대로 못 드시고
어저께 그렇게 쓰러지셨는데
맞아, 맞아
아니, 여리여리한 체구에서 그런 깡이 나와, 어?
그 호랭이 앞에
목숨을 걸고 딱 나서는 거 그거 말이야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아니면은 힘든 거야
그래도 일국의 왕이었잖아
아휴
아휴
저기, 저기, 저기
저, 저기
나리 일어나셨소?
좀 괜찮으신가?
알 것 없소
밥상은 놓고 가시오
아니, 그래도
저, 괜찮은지 좀
뵙고 가고 싶은데
아, 그냥 놓고 가라 하지 않소
가만있어 봐
근데 왜 이리 나한테 그렇게 쌀쌀맞게 그러는 거요?
어?
어제
어제!
뭐?
어제 한 일이 생각 안 나오?
뭐가?
아휴, 참
사람이 아무리 배운 게 없어도 그렇지, 어?
도리라는 것이 있고 정도라는 것이 있지
어디서 감히 나리께 역정을 내고
멱살을 잡고
어디서, 어디서, 감히!
아이, 내가 무슨
내가 무슨 멱살을 잡았다고, 씨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한 건데
아니, 그리고 내가 못 배웠는지 잘 배웠는지 어떻게 안다고
그럼 뭐 말, 말로 해야 아오, 그거를?
설사, 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못 배웠다고 치더라도
면전에다 대고 못 배웠다
아유, 말도 섞기 싫으니
- 아, 아 - 얼른...
어
나리
괜찮으십니까?
배가
고프구나
다 먹을 때까지 안 나갈 거냐?
아, 예, 네, 나가겠습니다
아, 근데 진짜 나리 아니었으면은
제 자식 놈하고 마을 사람들이
아주 큰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아이고, 이 은혜를 어떻게, 제가
밤새
나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드시는 걸 보고 가려고
저, 원하시면은
나가 있을까요, 나리?
말투가
어제와는 다르구나
아, 아휴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낸 건
보수주인이 처음이었다
아이고, 나리
아이고, 나리, 아이고
게다가
내 멱살까지
아, 아, 제가 언제 멱살을
아이고, 씨발
왜, 왜?
지금 뭐라 하였느냐?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씨, 씨발이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언제 씨발...
아, 아
저, 나리를 진짜 다시 보게 된
그런 시발점이 됐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제가 어떻게 씨발이라고 그러겠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큰 호랑이를
하, 진짜 시발점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자청해서 유배지가 됐다는 말이
- 무슨 말이냐? - 예?
어제 산에서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아이, 그거는 저, 절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왔구나
보수주인은 형조 판서가 올 줄 알았는데
당나귀 보낼 인맥도 없고
관직으로 이끌어 줄 연줄도 없는 내가
아니, 그게 그렇게 웃기십니까?
내 정체를 알았을 때 이 보수주인의 심정을 상상해 보니
그런 우여곡절이 있는 줄
내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배를 불려 주기는커녕
밥상만 받고 있었구나
아유, 아닙니다
그저 그냥 나리께서는
그냥 맛있게만 드시면 됩니다, 예
아유, 오셨다 오셨네, 오셨어
아이고
노산군은요?
- 괜찮으세요? - 에휴
왜요? 뭔 일이래요, 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셨어
- 아유 - 놀랬네
아유 입맛에 맞으셨나 보네
내가 뭐랬어
왕깡이야, 왕깡
- 아유 - 놀래는 거 봐
아, 근데 자네에 대해서 묻더라고?
참
아이, 나, 나를요?
이 국은 누가 끓인 게냐?
아, 예, 제가 꼭두새벽부터
동강에 나가서 직접 잡은 다슬기로 끓인 국입니다
직접 끓였느냐?
아니, 직접 끓인 건 아니고 제가 직접 잡은 겁니다
아니, 이 국을 누가 끓였느냐?
솜씨가 수라 상궁보다 낫다
예, 저 막동 어멈이라고 저, 음식 좀 하는 아낙이 끓였는데
뭐, 가끔 머리카락도 나오고, 예
막동이의 어미라서 막동 어멈이냐?
예, 맞습니다
저, 막동이는 애가 어린데 아주 똑똑하고
아주, 아주 그냥 야물딱집니다, 애가
아, 아, 요게, 저
요 어죽이
그놈이 놓은 통발로 잡은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입니다
예, 그리고 요 무침은 그, 산초로 무쳤는데
마을 최고 어르신이 그, 육육봉 절벽에서 캐 온 겁니다
그리고 요 저민 고기는
어, 용이라고 그놈이 토끼를 잡아서 만든 겁니다
그리고 고 위에 뿌려진 게 산삼 뿌리인데
아까 말씀드렸던 그 막동이 애비가
아주 소중하게 간직했던 걸 내놓은 겁니다
그리고 요 산딸기는 이천댁이라고 청상과부가 있는데
뱀이 엄청 많은 곳에서 따 온 겁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이 모든 거는
저의 엄격하고 철저한 그 진두지휘 아래서
이게 다 이루어졌다라는 거를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슬기는 제가 직접 잡은 겁니다
그래, 알겠다
아이, 저 자꾸 끓인 사람만 얘기하고
너무 몰라주셔서
제가, 제가 꼭두새벽부터 잡았, 잡았는데
알겠다, 기억하마
아, 예
아이고, 세상에
왕이 나를 입에 올리다니
- 출세했네, 출세했어 - 전하가 어려도
이, 여자 마음을 알아, 어?
어허이, 저
'전하', '왕'
이, 그, 그, 그런 거 하지 마, 어?
그, 그냥 저 '노산' '노산군' 그렇게...
에이, 우리끼리인데, 응?
전하라고 부르든 왕이라고 부르든 뭔 상관이에요?
에헤이
엊그제 그 호랑이 상대할 때 보니까
- 왕은 왕이더라고 - 어
에이, 형
누가 들으면 큰일 나 '왕', '왕' 그렇게 하지 마
예, 촌장님
저, 저기 누가 오는데요?
아이고, 저
청령포가 어딘지 아십니까?
아, 예, 이쪽...
씁
근데 누구신지요?
아, 우린 저 황해도 해주에서
전하를...
아니, 저, 저 노산군을 뵈러 온 일행입니다
황해도에서?
나도 못 가 봤는데
- 엄청나게 먼 곳에서 온 거야 - 아, 근데
노산군은 왜?
전하
전하
전하
이 무슨 하늘이 통탄할 일이옵니까!
전하를 보필하지 못한 이 못난 백성들을
아, 그, 저, 저, 저
-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저, 저, 저
자꾸 전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예?
저 관아에서 듣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깐, 응?
전하
안 된다니깐
전하
못 내려오게 단단하게들 막아, 빨리
전하라고 하면 안 돼
전하
아, 아이 전하 안 된다고
전하
우는 건 되는데 전하는 안 돼
어, 저, 어, 우는 건 돼
- 받으시옵소서 - 에이, 뭘
에이, 뭘 던져?
던지지 마
- 던지지 마 - 전하
아이, 참 나
전하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전하
고개를 들라
서찰을 전하였느냐?
분부대로 궁인에게 직접 전해 주었사옵니다, 대군마마
너는 다시 영월로 가라
가서 전하의 처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검각산 나무에 흰옷을 걸어 두어라
그리하면 전하께서 화살에 답신을 매달아 쏘실 것이다
예, 대군마마
우와
막 떠내려온다 막 떠내려와
아이, 조심해
이야
- 촌장님 - 어?
어떻게 이런 기발한 방법을 생각하십니까?
뭘 이게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 야, 다, 다 됐다, 이제
- 이제 걷어, 걷어, 걷어 - 우와
자
뭐가 들어 있는지 한번 보자
아이고
- 우와 - 아이고, 이게 뭐예요?
우와
- 야, 삼, 삼, 삼, 삼 - 우와
우와
- 아이고, 세상에 - 오
우와
굴비, 굴비
손바닥보다도 더 크네
육포 봐라, 육포
- 야, 이건 뭐냐? - 동태전도 있어요
내, 내가 그랬지
당나귀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배곯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지
뭐, 촌장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어?
난 옛날부터 우리 촌장 쭉 믿었어, 쭉
에이씨
저, 저 뻔뻔하긴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놀래라, 씨
아, 야심한 밤에 여긴 웬일이요?
응?
누구야, 응?
나리?
나리?
나리 오셨다
- 나리 오셨어, 나, 나 - 나리, 나리
어떻게 여기까지, 어우
아이고, 여긴
왜 이리들 놀라느냐?
그, 뭐 못 볼 걸 본 사람들처럼
- 저 오라버니는 누구야? - 아이고
막동아, 그러면 안 돼
- 막동아, 조용히 해 - 가만가만
나는 이홍위라고 한다
통발로 물고기를 잡은 것이 너로구나
그래
아, 막동...
아니, 이쪽은 저
- 이천댁입니다 - 이천댁
산딸기
산딸기, 산딸기
뱀 득실득실한 데서 따 온
아
자네가 산딸기를 따 온 이천댁이렷다
- 예, 예 - 예, 나리
막동 어멈
아, 자네가 밥을 해 준 막동 어멈이고?
아, 예
보내 준 산삼 뿌리는 잘 먹었네, 막동 아재
저, 제가 막, 막, 막동 아재입니다
아, 그, 그렇다면 저, 토끼를 잡은...
예, 제가 용이, 용, 용이입니다
네가 그렇게 뜀박질을 잘한다고
아, 예, 거, 이놈이
뜀박질은 영월 땅에서 그냥 으뜸입니다, 네
아, 그대가 보내 준 산초 또한
알싸한 맛이 일품이었소
아이고, 무슨
말리는 게 좀 까다롭습니다
한데 뒤에 이, 이것들은...
아, 예, 저, 저건 저
나리한테 드리려고 그, 사람들이 두고 간 음식입니다
예, 나리한테 드리기 전에
저희가 뭐 상한 게 없나
뭐, 이렇게 한번 이렇게 쭉 한번 보고 있었습니다
절대 손대고 이런 건 아니고, 예
아니다
이것은 광천골에 온 것이니
그대들의 것이다
아니 나리한테 온 귀한 음식을
미천한 저희가 어떻게...
아유, 성품이
어찌 그리...
마음이 고와, 마음이
글공부를 배우고 싶습니다
제 스승이 되어 주십시오
평소
글공부에는 마음이 없었다고 들었다
이, 마음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
저 같은 산촌의 백성들은
읽고자 해도 서책을 구할 수 없고
배우고자 해도 배울 스승이 없으며
배운다 한들
과거에 급제할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나리 같은 스승의 가르침이라면
그 희박한 확률을
뚫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조정에 올라가
바꾸고 싶습니다
조정에 끈이 없는 시골의 무지랭이도
평민 노비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으로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라
그래
한번 해 보자꾸나
'덕불고'라 '필유린'이니라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저쪽에, 저쪽에
일단은 여기다 둬, 여기에
아이고, 세상에
자
아이고
아이고, 성, 성은이, 아
어두일미라고 했습니다
드시지요, 예
좋은 건 자네가 먹게
아이고
아무리 제가 못 배운 무지랭이라도 그럴 순 없습니다
이 귀한 거를
같이 드시지요, 예
집 우 자 써 보는 거다
집 우
집 우, 집 주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넓을 홍 거칠 황
비가 어찌나 왔던지, 그냥
여 다 쓸려 내려가고 사람들이 꼼짝도 못 하고
뭘 이렇게 막 보내셨더라고
실로 묶어서
쳤어요
이 활줄은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뽑아낸 명주실로
질기기가 다른 활줄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측우기를 만든 자는 노비였다
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고 - 어이
신분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다
가
왜?
가
어딜?
아유, 아유
삼을 캐기 전날에는 절대로 합방을 하면 안 됩니다
- 밤에... - 아유, 아유
날 일, 달 월
찰 영, 기울 측
찰 영, 기울 측
이만한 멧돼지가 나를 잡으려고 막 이렇게
막동아 아부지 이걸로 할까, 이걸로 할까?
이거?
우리 막동이도 쓰는 거야?
나 잘했죠?
그래그래 우리 막동이 잘했다
아부지, 걸었어요
아이고, 잘했네 우리 막동이
우와, 예쁘다
거
그쪽을 약간 이쪽으로
- 어, 그래, 괜찮다, 괜찮다 - 이제 괜찮아요?
- 어, 어 - 네
와
우리 막동이도 호패가 생겼네
노산이 호랑이와 맞서 싸웠답니다
천하의 겁쟁이가 말입니다
꾸며 내기 좋아하는 자들이 지은
허황된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누가 그걸 믿겠습니까?
저들이 그리 방심하다 우리가 권력을 잡았소
새싹이 나게 두면 어느새 거목이 됩니다
그대는
금성 대군을 예의주시하라
난 영월로 가겠다
전하께서 그대들의 충절에 기뻐하실 것이오
전하
드디어 역사를 바로 세울 때가 되었사옵니다
신 금성은
순흥부사 이보흠
판한성부사 유귀산
동지중추원사 조유례 등과
거사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지방 수령들 또한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하나
전하의 윤허 없이는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하오니 전하께서
부디
윤허의 답신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노산에게 전한 서찰의 주인이
금성 대군이렷다
그래
그 내용이 무엇이더냐?
세 치 혀 하나로
역사를 날조하고
당상관까지 올라간 대감이
진실을 알아서 무엇을 하겠소이까?
역적의 가족들은 말이다
유배를 가거나
노비가 된다
하나 내 친히 네 가족들은
사지를 찢어
팔도에 뿌려 주마
한명회, 네 이놈!
사직을 더럽힌 대죄는
만고에도 없을 것이다
노산과 통하는 자는
모두 죽어야 한다
실종이 되었다?
예
대군마마의 분부를 받고 영월로 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돌아오기는커녕 기별조차 없사옵니다
네가 영월로 가라
가서 표식을 확인하라
예, 대군마마
오늘부터
유배자의 처소를 철저하게 경계하라는
조정의 명이 내려왔다
앞의 네 명은 유배자의 처소를
주야를 교대해 가면서 대문을 지키고
나머지 뒤의 네 명은 처소를 순찰해라
이제부터 우리는
유배자의 처소를 철저하게 경계한다
예
어디 가십니까?
노산군이 밤마다 악몽 꾼다 그래서
천마가 좋다고 해 갖고 그거 캐러 간다
아들보다 더 챙기십니다
남으면 저도 좀 주세요
뭐 하게?
너도 악몽 꾸냐?
악몽 꾸죠, 저도
아주 끔찍한 꿈
아버지 꿈
야, 인마
아버지가 나타나는 게 아주
그게 왜 악몽이냐, 어?
길몽이지, 이 자식아
그, 뭐냐, 어?
아, 이거 마을 아이들이 언문으로 쓴 글인데
어
노산군께서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아이들한테 받아 왔습니다
어
그래, 갖다 보여 드려라
보면 아주 흐뭇해하시겠다
이놈 기특한 거 봐
- 다녀오세요, 아버지 - 오냐
여기가
여기 있네
아, 이번엔 또 뭘 잡으시려고
이렇게 쭉 쏘신 겁니까?
나약하고 어리석어서
내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내 자신을 향해 쐈다
나약하시다고요?
나리가?
나약한데 어떻게 호랭이를 잡습니까?
그것도 이, 이, 이따시만한 거를
아, 그리고 어리석은데 어떻게 일자무식쟁이들
글을 가르치십니까?
그것도 아주 그냥 좔좔, 좔좔
고로
나리는
안 나약하고
안 어리석습니다
그래
네 말 듣고 보니 그렇구나
- 그래 - 아이, 그럼요
잠깐만요 잠깐이면 됩니다
촌장님 뵈러 왔는데 잠깐이면 됩니다
- 촌장님! - 어, 용이야
태산이가 태산이가 관아에 끌려갔습니다
- 뭐? - 촌장님
잠깐만요, 잠깐만, 촌장님
멈추거라
예, 저 군수 나리를 만나러 왔습니다
좀, 좀 들어갑시다
- 예가 어디라고! - 좀, 좀 들어갑시다
좀 들어가자, 이놈아
열한 대요
열두 대요
- 열세 대요 - 아이고, 태산아, 태산아
아유, 아이, 아이, 아유
아이고, 아유
저, 이게 대체...
아부지
이게 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유배지 처소를 몰래 드나드는 자가 있다 하여
내 잡아 오라 일렀다
아유
이놈이 제 아들놈입니다
저, 몰래 드나든 게 아니라
제가 심부름을 시킨 겁니다요
유배지는 보수주인 외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말라 했거늘!
장 백 대를 맞아야 할 것이야
그럼 저
제가 심부름을 시켰으니
제가 맞겠습니다
제 아들놈은 좀 풀어 주십시오
- 예? - 뭣들 하느냐
이 무식한 놈을 당장 끌어내지 않고
- 예 - 나리
좀 풀어 주십시오
나리, 예?
내가 올 때마다 소란을 피우는 자로구나
저, 나리
제가 무지해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리
기괴하고 흉흉한 소문이 들려
내 와 보았더니
네가 일을 해괴하게 하고 있더구나
예
예, 맞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그러니 저를 벌하시고
제 아들놈은 좀 제발
지엄한 국법을 어긴 것은
그 죄가 작다 얘기할 수 없다
예, 맞습니다
천 번, 만 번 지당하시옵니다
하지만 장 백 대를 맞으면
죽거나 병신이 됩니다, 나리
계속 쳐라
- 나리 - 뭐 하는 게냐!
계속 쳐라
- 예 - 나리
- 열세 대요 - 아유, 태산아
멈추어라!
당장 이 자를 풀어 주어라
배소를 함부로 드나드는 자이옵니다
도적질을 했을지
노산군 나리를 해하려 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내가 불렀다
유배 생활이 적적하여 말동무나 할까 하여
내가 부른 것이다
그러니
당장 풀어 주어라
어찌할까요, 대감마님?
계속 쳐라
나리
나리, 좀 제발
죽을 때까지 쳐라
나리!
나리
쳐 죽여라
한명회, 네놈이 감히
왕족을 능멸하는가!
노산 저것이 자기가 아직도 왕인 줄 아는구나
한명회, 네 이놈!
쳐라
쳐서
죽여라
치지 말라 했다!
노산군께서 지금 당장 배소로 가지 않으면
이백 대, 삼백 대
오늘 저놈은 맞아 죽을 것입니다
나리
나리가 이러시면
우리가 더 큰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냥, 그냥 돌아가십시오
태산이를 죽인다 하지 않소!
제발 돌아가 주십시오, 예?
뭣들 하느냐?
어서 노산군 나리를 배소로 모시거라
미천한 제가
지 분수도 모르고 시키시지도 않은 짓을 했습니다
제가 잊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하는지
지금 이 나라의 왕이 누구인지
이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노산의 눈이 달라졌어
힘없고 병약했던 그 눈이
이곳에 와서
범의 눈이 되었다
죄인 노산군은...
노산 저것이 자기가 아직도 왕인 줄 아는구나
쳐라
쳐서
죽여라
전하
부디 윤허의 답신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성 대군이 군사를 일으켜
전하를 몰아내고
노산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 하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뜻에 동참할
지방 수령과 관리들을 더 모읍시다
최대한 은밀히
오늘 일로 노산의 마음은 더욱 굳을 것이다
분명히
역모에 동참할 것이다
노산이 죽어야
네 아들이 산다
그리고 마을이 산다
넌 역모의 증좌를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한다
한양성으로 출정할 병력이 모두 준비가 되었소
더 늦출 순 없소이다
전하의 윤허가 없더라도 거사를 치러야지요
어찌 되었는가?
숙부님
저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유배자가 아닌 역사의 증언자로서
숙부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성공한 역모가 역사의 주인이 되어 버린다면
앞으로의 조선은
창칼을 앞세운 피비린내 나는 권좌의 난이
수십 년
수백 년 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거사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했다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는 기록이
후대에 전해질 것입니다
숙부님은 그곳 순흥에 계십시오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말씀하셨던 마대산 성황당 나무 아래로
잘못된 역사를 다시금 바로잡기 위해
조선의 종묘사직과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노산과 금성 대군이 은밀히 내통하여
순흥 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피바람이 불겠구나
떠날 채비를 하라
예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대는 마대산으로 가라
가서
전하를 뫼시고 와라
신 동지중추원사 조유례
그 명을 따르겠나이다
- 가자 - 예
드디어 그릇된 거짓 역사를 끝낼 때가 왔다
이제
반역의 역사를 끝내고
백성을 위한
새로운 조선을 열 것이다
나는 이곳에 남아
전하께서 당도하는 즉시 합류할 것이니
기마대를 필두로 한 전 병력은
출정하라!
진군하라
하지 마십시오
무슨 소리냐?
금성 대군이 나리를 부추겨 역모를 일으키려 한다는 걸
한명회 대감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나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김없이 고하라고
이상한 낌새가 생기면 지체 없이 관아에 고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낌새를
- 느꼈느냐? - 예
나리가 쓴 서찰을
거두어 가는 사내를 봤습니다
그만 멈추십시오
멈추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으면
나는
관아로 갈 겁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 삶을 아느냐?
아바마마의 뜻으로 세자가 되었고
왕위에 올랐고
수양 숙부의 야심으로 쫓겨나
이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왜 하늘이 아직까지 나를 이승에 머물게 했는지
어찌하여 내가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알게 해 준 사람들이
그대와 태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다
난 멈추지 않겠다
그리고 그대는
관아로 가라
그리하면
그대와 마을 사람 모두가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나리
저, 나리
기어이
가시려는 겁니까?
더 이상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어라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아끼는 사람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까?
그대는
아닌가?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 군의 이동 상황은 어떠한가?
예
지금쯤 우리 군이 단양을 지나 제천에 당도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군과 합류하기로 한 병력들이 있습니다
전 병력
진군하라!
그 병력이 합류한 우리 군의 군세와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이옵니다
합세한 병력들과 함께 길을 따라 여주를 거쳐
매봉산에 집결해
전하와 대군마마의 명을 기다릴 것입니다
전하께서 매봉산 집결지에 당도하시면
동트기 전에 한양성 숭례문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숭례문에서 궁궐까지는 한 식경이면 충분합니다
성의 문지기가 우리와 함께하기로 하였고
궁 안 저들의 군사는 이백
우리의 병력은 천팔백
승리는 시간문제입니다
지금쯤 전하를 뵈었겠지요?
제발 무사히
동지중추원사와 만나셔야 할 텐데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나리 처음 뵈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청령포에서
- 그래? - 예
어땠나, 그때의 나는?
어땠을 것 같습니까?
음, 참으로
잘생겼구나?
생긴 건 제가 좀 더 낫지요
가시죠
저, 다 왔습니다
여기가 성황당입니다
계십시오
아이,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누구요?
누구요?
전하
신 동지중추원사 조유례라 하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소
거사를 치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시지요, 전하
가자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한명회
내가 왜 금성과 노산을 지척인 순흥과 영월에
유배시켰는지 알겠는가?
불순한 역모의 수괴들이 접촉을 하는 그 순간
이날을 위해서였다
저 간악한 역도의 무리들을
처단하라
너희들은 전하를 안전하게 뫼시어라
여기는 내가 맡겠다
예
벌써 당도하셨을 시간인데
왜 이리 늦으시는 건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대규모 병력의 이동 시간이 길면 길수록
저들이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사옵니다, 대군마마
끝까지 막아야 한다
쫓아라
단양 마대산으로 간다
거기서 전하를 직접 뫼시고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다
전하를 호위하라
나리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너를 따르던 자들이 피를 흘릴 것이다
한명회
네놈이 진정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
내 한 손엔 칼을
한 손엔 상을 들고 다시 너를 찾겠다고 했다
한데 네놈이
감히 칼을 불렀으렷다
네놈과 네 아들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에 산 것이라고는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예
차라리
차라리 나를
- 차라리 나를... - 네 이놈!
내 서찰을 훔쳐 보고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더니
이런 함정을 꾸민 것이냐?
네놈이 한명회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무엇을 약조받았더냐?
네 아들의 입신양명이었더냐?
이 천벌받을 놈
나리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어찌 됐건 상관없다
대역죄인을 포박하라!
예
나리
나리
나리
나리
대역죄인 금성 이유는
사약을 받으라
전하
신 금성이옵니다
신이 부족하여
전하의 안위를
모시지 못하였사옵니다
부디
강녕하시옵소서
나리
왜 그러셨습니까?
왜 혼자 짊어지십니까?
들어오시오
이쪽이오
어찌 지내셨습니까?
내 막동 어멈이 해 준 뭇국이 생각이 나서 혼났다
막동이가 '천자문'은 잘 떼는지
장을 맞은 태산이가
상처는 잘 아물었을지도
내 걱정이 되는구나
잘 지냅니다, 다
예
그리고
무엇보다 보수주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잘생긴 이 얼굴 말입니까?
다시 보니
여전히 출중한 외모로다
내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예
말씀하십시오
대역죄인
이홍위는
사약을 받으라
역적 이홍위는
주상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도 불구하고
금성 대군을 비롯한 일당들과 함께
천인공노할 역모를 꾀하였다
이에
사약을 내리노라
어명이니
어서 나와 사약을 받으라
아니에유, 아이고
나리
죄인을 끌어내라
예
무엄하다!
감히 왕족의 거처를 해하려 하느냐
에이, 육시랄
이런 육시랄 것
저 역적 하나 어찌하지 못해
이 무슨 꼴이오
어?
제게 시간을 주시면
저 역적을
끌어내겠습니다
아이, 저
전하
보수주인 엄흥도입니다
이제
강을 건널 때입니다
때가 되면
저 활줄로
부디
그대 손으로
날 죽여 달라
저들 손에 죽긴 싫다
저들이 내린 사약에
죽는 건
죽어도 싫다
부탁이다
부디 그대 손으로
강을 건너게 해 달라
전하
예
제가 건너게 해 드리겠습니다
가십시다
예
가시지요
예
전하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조금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다 왔습니다
다 왔습니다, 전하
강가에 다 왔습니다, 전하
갑니다!
전하
전하
안으로 들어가라
노산의 시체를 거두거나
장사를 지내는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삼족을 멸할 것이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대는 나와 함께했다
그대는 나의 벗이요
누이요
어머니였다
그 고마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나는 길을 떠날 것이다
먼 훗날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나의 벗이 되어 주면 좋겠구나
나도
기꺼이 그대의 벗이 될 것이다
나리
차갑지요?
자, 나갑시다
따뜻한 데로
갑시다
나갑시다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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