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anguage subtitles for What The Bleep Do We Know의 2편 Down the rabbit ho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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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subtitles

더 위대한 마음을 만나고

더 작은 마음의 세계를 만나는 것은 짜릿한 경험입니다.

그 마음의 끝은 어디일까요? 끝은 없습니다.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임을 회피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위대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종교와 같은

생각의 틀 속에 갇혀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 안에 갇혀 그 불안정한 생각의 위에서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고 우리는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종교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가 화려하게 꾸며놓은 우리 자신의 불안을 탓하고

그러한 수많은 생각의 틀은

인류역사를 통해 잘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 틀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리차드 벅 필리포스키의 결혼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을

자극하게 됩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점점 더 동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새로운 꿈은

마치 우리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천둥처럼

그 전기신호는 신경망의 하늘에서

존재의 땅으로 자극을 주고

몸속에 감정의 폭포를 만들어냅니다.

거기에 따라 우리의 몸은

감정적으로 그 경험들을

의욕적으로 정복하고 성취하려는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두려워하는 존재를

꿈을 꾼 후에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처럼

두려움 없는 존재로 만들거나

변화시켜주게 하는

홀로그램이나 이러한 화학물질이 없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성취나

즐거움은 없을 것입니다.

전두엽은 인간의 뇌에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

전두엽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하게 하는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신경계의 활동을 통해

그리고 전두엽이 이행하는

일반적이거나 복잡하지 않고 분명하고

특별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자유의지의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과학의 이론을 위배하지도 않습니다.

또 그것은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과도

어느 정도까지는 일치합니다.

인간이 다른 종과 구분되는 것은

뇌에서 차지하는 전두엽의 비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에서 전두엽의 역할은 굳은 의지를 가능케 하고

의사결정과 행동을 통제하며 영감을 주게 하는 것입니다

전두엽은 우리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도 전두엽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선택이나 결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뇌는 '뉴런'이라고 하는 미세한 신경 세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뉴런은 뻗어있는 미세한 가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뉴런들과 연결되어 뉴런망을 형성합니다

뉴런들이 연결되어 있는 곳은 생각이나 기억으로 구체화 됩니다.

그래서 뇌는 조합된 기억의 법칙에 의해 자체의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개념과 생각, 감정들은

모두 이 뉴런망의 상호연결로 구축된 것입니다.

각 뉴런의 상호 간의 가능한 관계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사랑의 개념과 감정은

이 광대한 뉴런망 안에 축적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개념을 사람마다 다른 개념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실망에 연결시키기도 하고

사랑을 생각할 때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슬픔, 화

심지어 분노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노는 상처나 특정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것이 거꾸로 사랑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관찰되는 모든 것들은 양자의 치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양자의 치수가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항상 기억의 거울에 반영을 통해

어떤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존재하는 '나'를 인지하게 하는 것은

기억의 거울에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뇌가 기억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특정한 신경망이 반응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생리학적으로 뇌세포가

함께 반응하고 엉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이러한 뇌세포는 장기적인 관계를 갖게되고

매일 화를 내거나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매일 괴로워하거나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이유를 되뇌인다면

여러분은 매일 신경망을 재구성하고 재통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경망은 긴 시간에 걸친 그러한 관계를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합하게 되죠

또 뇌세포는 같이 반응하거나 더이상 얽히지 않기도 합니다.

장기적인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생각의 과정을

제지할 때마다

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신경세포들의

오래된 연결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정신적인 연습을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우리의 기술은

두뇌의 어떤 회로를 만들어 내고

연습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점점 더 쉬워진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내일을 미리 경험할 수도 있고

이러한 연습을 확신과 좋은 느낌을 가지고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종교교리에도 생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없지만

또 여러분의 기도와 의도가

신에 의해 응답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종교교리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양자물리학과 관찰자와 관련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더 현실적인 생각을 만들 수 있을 때

우리의 두뇌는 그렇게 계획되게 됩니다.

무한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전두엽은

우리가 생각을 놓아두고

우리에게 장기적인 시간동안 생각을 품고 있도록 해주는

제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자극의 볼륨을 낮추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양자장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 그 순간이

다른 어떤 것보다 생각을 더 생생하게 경험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죠

우리는 육체적으로 화학적으로 감정적인 인간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죠

우리가 똑같은 감정에 접근하고 매일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경우

그리고 삶에서 변화와 진화의 측면에서 갈 곳이 없어질 때

그것이 우리의 한계가 됩니다.

매일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

똑같은 감정을 단지 경험하기만 하면서

우리가 삶을 충분히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실제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나는 내가 누구이며 나의 성격을 재확인하고"

"나는 이것을 해야 하고 여기에 가야하고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주인은 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죠

생각의 주인은 시간 속의 하루하루를

현실의 길과 아직 경험하지 않은 감정을 창조하는

기회로 봅니다.

그리고 그 하루는 무한한 미래를 더 풍부하게 해주는

하루가 됩니다.

뇌에는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시상하부는 마치 작은 공장이라고 할수 있죠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경험하는 특정 감정에 맞는 특정 화학물질을

조립하는 장소입니다.

이 화학물질은 '페타이드'라고 불리죠

그것들은 작은 아미노산의 고리입니다.

몸은 기본적으로 20여 개의 다른 아미노산을 만들수 있는

탄소단위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몸의 구조를 형성합니다.

시상하부에서는 '펩티드'라고 불리는 작은 단백질 고리를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감정상태에 맞는

특정 신경펩타이드와 신경호르몬으로 조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상태

즉 분노에 대한 화학물질과

슬픔과 고통에 대한 화학물질

욕망에 대한 화학물질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나 뇌에서 경험을 하는 그 순간

시상하부는 즉시 펩타이드를 조합합니다.

그리고 뇌하수체를 통해 혈류 속으로

그것들을 풀어놓으면

혈류를 통해 펩타이드 조합이 흐르는 순간

몸속의 다른 중심과 기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몸속의 개개의 모든 세포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수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포가 수천 개의 수용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둥을 세우고 외부를 향해 열려있죠

그리고 펩타이드가 세포에 들어오면

글자 그대로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것처럼

수용체의 표면에 앉아 그것에 붙게 되고

수용체를 움직여

대문의 벨이 울리는 것처럼 세포로 신호를 보냅니다.

파티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한 신호가 고장나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곳에서

문제들을 다룹니다.

혹은 오늘 일을 어제와 똑같이 다루기도 합니다.

-뭐죠? - 여러 가지

본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오래된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많은 순간들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죠

그리고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시작하게 됩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그 변화가 영원할 정도로 충분히 수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색을 더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것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모든 일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앞선 우리의 경험들과 감정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는 감정적인 무게가 실려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과 비물질적인 정신적인 존재에서

물질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실 물질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말이죠

이 물질이라는 의미는

분자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는 실제 분자들과 배열과 구조로 이루어진 펩디드를 말합니다.

과학은 이미 시상하부가 신경펩타이드를 만들어내고

이 신경펩타이드는 강한 화학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펩타이드와 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펩타이드는 수용체를 찾아내서 그 위에 결합해서 붙어버립니다.

다시 떨어졌다가 돌아오기도 하죠

그렇게 붙어서 세포를 변화시킵니다.

펩타이드가 그 안에 자리를 잡게 되면 생화학적인 결과가 일어납니다.

어떤 것들은 세포의 핵까지도 변화시키죠

모든 세포는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 모든 세포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특히 우리가 의식이라는 것을 관찰자의 관점이라고 규정한다면 말이죠

세포의 관점은 항상 존재합니다.

세포은 그것을 알고 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지도

또 세포분열을 해야할지 멈춰야 할지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세포는 몸속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의식의 단위입니다.

배고파!

세포는 뇌 쪽으로 소리를 지르며 명령합니다.

-배고파! -오늘 양을 아직 못 채웠다구!

그리고 뇌에게 느낌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뇌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에 목소리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 배고파 - 우리가 우울한 이유를 생각하거나

우리가 혼란스럽다거나

고통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몸이 뇌에게 아직 화학적인 필요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뇌가 활동을 시작하고

과거의 상황과 전두엽에 번쩍이는 영상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식탁을 완전히 접수했어!

계속 넣어줘. 계속 계속

-맛있어 - 아 좋아~

중독에 대한 저의 정의는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멈출 수 없는 어떤 것이죠

우리는 몸에 있는 세포들이 생화학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쪽으로

스스로를 몰고 갑니다.

항상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겨

- 매일 그래 - 왜 또 나야

그래서 제가 내린 중독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감정상태를 조정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거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럴 줄 알았어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감정적인 욕구와

우리의 느낌을 나눌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섹시하다거나

그 사람들이 동병상련의 고통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제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잘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먹다만 새우를 칵테일 소스에 넣으면 어떻해?

우라질 뚱보 아저씨 난 신랑 여동생이라구...

내가 엉덩이를 소스에 담그든 무슨 상관이야...

서서 뭐하는 거야? 가서 접대 좀 해... 손님들 접시 모두 채워드리라구...

실험실의 동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 동물들은 이러한 신경물질을 생산하는 뇌의 일정부분에 전기적인 중독이 되어있었죠

그리고 화학적으로 이러한 물질을 얻을 수 있도록

조종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훈련시켰습니다.

말 그대로 신경화학물질이 나오도록 말이죠

그러자 배고픔이나 성욕, 갈증이나 수면욕보다 오히려

신경화학물질이 나오는 조종버튼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이 상황은 육체적으로 기진맥진 할 정도로 계속되어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게 되어서야 멈추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런 스트레스에 너무나 중독된 나며지

그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그 상황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 상황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즉 우리의 선택을 흐리게 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자극과 반응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두엽의 사소한 자극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실험실의 개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미 중독되어 있는 감정 안에서

그들이 예상했던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음 주에 비슷한 성향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만다!

바람 피는 것도 못 봤어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진사가 농담한 거에요

계속 추시죠~ 음악 부탁해요

괘...괜찮아요?

그러니까

신랑이 바람 피는 걸 봤어요

음..언제요?

지금 막이요

제가 신랑이랑 같이 있었는데요...

입 모양보고 들을 수 있다구요

어.. 미안해요 어.. 제가 신랑이랑 지금 막 같이 있었는데요

신랑은 폴렛을 사랑해요

어디서 봤죠?

폴란드 식이죠 모두 같은 옷을 입어요

사람들은 모두 모험가입니다.

사람들은 모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첫걸음에 불과합니다.

만일 통찰의 순간을 경험한다면 진동을 수반하는 통찰의 순간을 경험한다면

그 통찰은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몸의 세포는 가능성에 의해 활기를 띠게 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잠재능력들과

신비의 문 속으로 조금 더 내려가는

미래의 이야기나 기회들에 의해 더욱 활기를 띠게 됩니다.

딜레마나 신비주의 혹은 그러한 가능성을 경험하도록 한다면

만일 그렇게 신비의 문밖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면 사람들은 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러한 정보를 이미 처리해보았고

마음속이나 뇌 속에 족적을 남기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은 결코, 전과 같을 수가 없게 되죠

하루하루 중독된 똑같은 감정들을 단지 경험하기만 하면서

우리가 하루의 삶을 충분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생각의 주인은 확실히 다른 종족입니다.

한잔 더 하실래요?

생각의 주인은 하루를 시간 속에 존재하는 기회라고 보고

새로운 현실의 길을 창조해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감정들을 만들어내서

그 하루를 무한한 내일들로 만들어 갑니다.

- 신랑을 위하여! - 신랑을 위하여!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은~ 여자들 꼬시러 왔지 ㅋㅋㅋ

정신과 신체의 상관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사춘기의 소년들은

아시겠지만 아랫도리의 통제를 받는 경우가 많죠

눈은 감정의 세포들의 통제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 감정에 좌우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를 결정하게 하는 빠른 안구운동도

중뇌에 의해 조정됩니다.

그곳은 중재를 담당하는 수용체나 다른 수많은 수용체를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탐색명령 역시

특정 감정상태를 찾는 것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오우 아가씨~~~~ @@

뭘 기다리는 거야 너희도 남자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군!

빨리빨리~ 서둘러 대시해~ 가라구!

아가씨 안녕하세요~*.^

당신도 원하잖아요~ 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구요

섹스에 중독된 사람은 어떤 걸까요?

사실 섹스는 우리에게 미래를 조사하게 하는

하나의 발명입니다.

이점을 잠시 생각해 보세요

와우~~~~~~~~ @@

안녕 젊은 오빠~

바지 속에 물건은 안 쓰고 그냥 보기만 할꼬야? 아잉~ ㅋㅋ

폴카뮤직을 들어야지 여기 사람들이 폴카뮤직을 원한다구

폴란드식 결혼에 폴카음악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내 기계에서 손 떼시라구요

폴란드식 결혼에 폴카음악이 없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구!!~

만지지 마시라구요 퍽~ @@

폴란드식 결혼에 폴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구!!

우리의 마음은 글자 그대로 우리의 몸을 창조합니다.

모든 것은 세포단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세포에 명령을 내리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 명령은 우리가 새겨놓았던 경험과 정보들을 근거로 한

뇌 속의 신경망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삶 속의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상자를 이용하는 셈이죠

마음의 움직임을 바꾸려면

말 그대로 신경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뜻하고

혹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태도를 경험하려 하고 똑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으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를 그러한 정체성이라고 강화시키고 있는 셈이죠

여성수감자들이 있는 감옥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감자들은 모두 마약중독이었죠

그들 모두가 마약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고

마약을 많이 하면 할수록 몸 내부의 엔돌핀이 만들어지는 능력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과 그 수용체가 둔감해지며

실제로는 줄어든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뇌 세포가 덜 만들어진다는 이런 새로운 정보를 통해

사람들은 중독이라는 것은 오래된 습관에 갇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개인의 정신적인 삶은 고통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고통에 의해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채색되어버릴 정도죠

그리고 그 반응하는 모든 방식이나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고통에 관한 것이 되기도 하죠

수용체는 감각에 의해 변화합니다.

만일 어떤 약이나 내부의 분비액이 오랜 기간에 강렬하게 자극받아 나오게 되면

말 그대로 줄어들거나

둔감해지거나 통제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비슷한 양의 화학물질이나 체액이

작은 규모의 반응을 유도해내게 됩니다.

안돼! 안돼!

세포를 매일 일정하게 반복해서

동일한 방식이나 화학물질로 충격을 주게 되면

분열하는 세포들과 더 젊은 세포들은

이러한 감정에 맞는 신경물질을 더 만들어 내게 되고

비타민이나 미네랄 그리고 분비액 교환을 위한 수용체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심지어는 독성이 있는 물질까지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모든 노화는 단백질의 부적당한 생산 때문에 일어납니다.

나이가 들면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피부가 탄력을 잃고

그 탄력은 단백질입니다.

효소의 문제는 어떨까요? 소화력이 떨어집니다.

활액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부서지기 쉽고 뻣뻣해집니다.

뼈도 역시 약해집니다.

그래서 모든 노화는 단백질이 부적당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중요한가 입니다.

좋은 영양공급을 한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20년 동안 자기학대로

세포가 그 영양분을 홉수하거나 받아들일 수용체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영양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중독을 통해서입니다.

그 사람의 몸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24시간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난 네가 싫어!

우리는 결코

'너무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환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싫어하는 이유들이 있는 상황 속으로 환생합니다.

난 네가 싫다구

머저리

꼴 좋군 네 꼴 좀 봐

못생긴 데다가

아무 쓸모도 없이

나이만 먹고 있잖아

난 널 증오해

놀랍지 않나요?

만일 생각이 물에 이런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생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어느 누구도 당신의 아름다운 본성과

내면에서 외부로 향하는

충만한 지혜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우리는 중독되는 것일까요?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꿈을 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여러분에게 더 나은 꿈을 꾸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카인이든 헤로인이든 혹은 니코틴이든 알콜이든

그것에 중독되어 있을 때는

그 물질이 새로운 뇌 세포의 성장을 저해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물투여가 중단되면

뇌 세포의 성장기능은 즉시 되돌아옵니다.

으~

이러한 함정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함정을 발견할 때까지 쓰레기 속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함정이 단지 가르침을 위한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새로운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주는 이러한 것들을

당신의 문앞까지 가져다 놓고

여러분은 그 안에서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그것을 곰곰이 되돌아 보려고 한다면

딱딱하게 굳은 마음의 설정을 넘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기~

와~

치약 좀 빌려줄래?

고마워~

'우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뜻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 안에 우리의 개성과 사람들,

장소들, 시간들, 사건들과 관련 있는 곳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체성과 개성을 재확인하고 있는

뇌 안에 관련된 조직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제 과학은 생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과

그리고 생각들이 어떻게 우리의 몸을 약하게 만드는가의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행동운동 요법이나 그 외 방식으로

실제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생각이 몸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생각은 여러분의 현실 대부분을 창조해냅니다.

생각은 여러분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뚱뚱하지만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멋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바비인형에서 모델까지

불가능한 이미지에 항상 스스로를 비교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가치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불가능한 평균을 향해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는 셈이죠.

우리가 감정적인 중독과 관련된 것들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뉴스와 모든 미디어들입니다.

그것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않고서도

아름다운 경험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미디어와 텔레비젼

그리고 이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가득한

환경 속에 의해 너무 매혹 당한 나머지

육체적인 외모라는 점에서 볼 때 실제로는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와 용기와 같은 정의들은

모두 환상입니다.

결국, 그런 것들에 굴복해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그들의 영혼이나 욕망이 표면으로 결코, 떠오르지 못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고

그러한 질문이 표면 위로 나타나게 되면

비로소 더 나은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질문들을 하게 되고

신경망의 도약을 위한 개념들과의 교류의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의 세상과 삶을 지배해오던

오래된 개념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마음을 동요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여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입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이러한 틀들이 부서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편안함과 그러한 혼란들 뒤에 사이에서 따라오는

존재의 주인이 되었을 때 오는 실재의 편안한 상태 사이에는

가끔 거북한 기간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혼돈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고

오래되고 잘못된 방호물 뒤로 숨어버립니다.

그들이 이성적인 삶을 살고

평화 같은 것 속에서 죽었다고 해도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실험장치에서 영적으로는 전혀 진보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뇌라고 하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뇌의 신경망을 재구성하는 영역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개념과 재접속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행위들은 내면에서 밖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내가 마음을 바꾸면 나의 선택들도 바뀔까요?

내가 선택을 바꾸면 나의 삶이 바뀔까요?

왜 나는 바뀌지 않는 걸까요? 내가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마음속으로 집착하는 것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집착하는 사람이나 장소, 사물.. 시간 또는 사건들은

내가 그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거기서부터 인간의 삶이란 것이 펼쳐지는 것이죠

삶은 우리가 항상 함께 해온 거대한 책의 한 페이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항상

우리에게 전해내려온

야망에 찬 추구는

자기를 반성하고 증오하는 지루함으로부터

새로운 꿈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야망에 찬 하나님들입니다.

지구는 은하계에서

종교에 엄청나게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유일한 행성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사람들이 선과 악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들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선악이나 이러한 부분에서 문제는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선악의 문제로는 도저히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사회와 부도덕한 대결에 직면해서는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겪는 불운이며 또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수하고, 배우고, 찾으며

더 나은 꿈들을 창조하기 위해 이러한 지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록은 이곳에 존재하고 내가 그것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기록하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문명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 완벽해져야 합니다.

비판이 두렵기 때문에 그래야 할까요? 아닙니다.

혹은 하나님의 벌이 두려워서 아니면 죄를 짓고도 용서를 받지 못해서일까요?

아뇨,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제 말은 이런 모든 것들이 실제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변명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견식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작용에는 내가 다뤄야 할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내가 현명하다면 나중에 직면해서 해결하고

마음의 평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준입니다.

모든 존재의 기초가 되고 사람들이 신학적으로 묘사하는 하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해야만 합니다.

신이 어떻게 드러나고

세상 속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이지만

확실히 전통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신으로부터

내면의 신으로의 위대한 도약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발전한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신이 내면에 존재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듯

신은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신을 외계영화처럼 생각합니다.

즉 가슴을 가르면 나타나는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죠

내면의 신은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신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는 뜻이고

또, 사실 우리 자신들 역시 신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과 여러분의 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하나이기 때문이죠

신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것은 악마의 목소리라고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면 그것이 사이비란 뜻일까요?

그것이 사이비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은

분리될 수 없는 신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식은 두뇌가 새로운 신경망으로 구성되게 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판에 박히고 자동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기 때문이죠

지식을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정보를 모아서

회로를 만들고 처음으로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는

감각을 발달시키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빠져있는 어떤 행동이나 특징적인 패턴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제가 말한 어떤 것을

듣고 그것을 기억해내기만 해도

여러분의 몸은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기능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근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들 박사가 설득력 있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즉 기본적으로 기억은 암호화되어있으며

여러분의 유전적인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신경시스템이 고정되어 있고

쉽게 변하지 못한다는 쪽의 의견이 많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엄청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신경시스템 내부에서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뇌 구조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뇌는 통일장을 경험하고 삶의 통일성을 경험하기 위해

아주 잘 설계되고 꾸며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물질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우리가 에너지장에 의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영점장'이라고 할 수 있는 빛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는

분리라고 하는 모든 개념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분리는 지금 세계의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개념을 공명하는 우주에 적용해보고

또 인간의 경험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경험 역시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이 공명한다고 가정을 하면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궁금해질 수도 있게죠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연구를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연결이 되면 그것을 텔레파시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장소의 물건과 연결이 되면 그것을 투시라고 할 수 있고

시간을 넘어 일어나는 일들과 연결이 되면 예지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의도가 세상에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 쪽으로 연결이 되면

그것을 염력이나 원격치료 같은 말로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텔레파시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알려진 것들에게는

12개 정도의 목록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영성(靈性)을 이야기하는데

왜 극도로 작은 물질인 플랑크 스케일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느냐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영성은 외부에 어떤 곳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대답을 하자면 플랑크 상수 역시 극히 작지만

어느 곳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딜 가든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은 입체영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퍼져있는 프랙탈처럼

다른 비율로 반복됩니다.

양자물리학은 20세기까지의 물리학이었고

과학과 영성을 연결하는 새로운 무엇이

21세기에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외부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모른척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는 공동의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미래를 위해서

바른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삶의 자유와 양자물리학

그리고 현실을 계속 자유롭게 해서 이르는 근본적인 현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네 물론 그 현실들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이루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언제 우리가 나로부터 하나로 도약할 수 있을까요?

잠재의식에는 언제쯤 이를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가 자아를 넘어 일체에 대한 지식에 이를 수 있을까요?

우리의 본성을 깨닫기 시작하면

더 이상 질문이나 정답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단지 별안간의 앎이 존재할 뿐이죠

이제 신비의 문밖으로 나와서

여러분은 환상과 경이로움과 마법의 세상에서

여러분은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가능한 사건들로부터 의식에 의한 선택을 통해

경험이라고 하는 실질적 사건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과학은 자유의지와 만나게 됩니다.

의식은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물질만이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 역시 그것들이 가능성이라는 데까지로 한정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선택하는 자는 누구인가?

모든 현실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들이 동시에 존재할 가능성은 없는걸까요?

평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앞, 뒤 그리고 좌우만이 존재합니다.

여기는 위와 아래가 없습니다.

제가 도티가 어디 갔느냐고 물어봤는데

선 밖으로 사라졌대

- 저게 어디서 온거지? - 저게 무슨 자국이야?

여기에 사는 2차원의 존재들은

3차원 사물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이 2차원의 평지인들에게는

6면체나

구(球), 4면체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타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죠

2차원의 관점으로 보면

3차원에서 들어온 손가락은 다음과 같이 보입니다.

맙소사!

- 땅 위에 평평한 게 뭐지? - 너도 봤어?

도망쳐~!

안녕 꼬마 원~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군요.

아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은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안녕 꼬마 원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누가 이야기하는 거죠? 당신은 누구세요?

여기가 항상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죠

나는 다른 차원, 다른 공간에 존재한단다.

나는 너 바로 위에 있어.

제발 제발 그 단어는 쓰지 말아주세요.

-무슨 말을? - '위' 란 단어 말이에요.

위에 있다는 것?

쓰면 안 돼요.

글쎄,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니?

몰라요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그 단어를 사용하면 무서운 벌을 받을 수도 있다구요.

당신은 유령인가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난 단지 너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란다.

나는 한 번에 여러가지를 볼 수 있지만 넌 그렇게 할 수 없지?

네? 어떻게요?

그래, 좋아

방에 금고가 있구나!

그리고 그 안에는

동전 12개 하고 소원목록 그리고 여권이 있군

어떻게 그걸 아는 거죠? 당신은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너와 똑같단다

내가 너 위에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3차원에서는

네가 있는 곳의 내부를 볼 수 있단다

3차원이라구요? 당신은 정신 나간 유령이군요.

보세요 2차원밖에 없다구요

그럼 내가 네 배를 건드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내 피부를 잘라내야겠지요.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만~ 그만해요.

더 알고 싶니?

- 뭘 더 말이에요? - 차원

그리고 방향들

아...아뇨..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없잖아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제가 어떻게 될까요?

그걸 알게 될거야.

- 좋아요. - 훌륭하구나.

전혀 몰랐어요.

우습지 않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우리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든단다.

x스핀이 어쩌구 저쩌구 그 결과......

David Albert 박사 콜럼비아 대학 교수 물리학-철학협회 회장

됐습니다.

"시간과 기회" "양자역학과 경험"의 저자

이 대목에서는 웃는 게 편하죠

Joseph Dispenza 박사 Life 대학 척추학 박사

"뇌의 진화와 현실창조의 과학" 출판 예정

Masaru Emoto 박사 대체의학박사, IHM협회 회장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저자 /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수천 년 전에 물을 통한 영혼의 물질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물을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Amit Goswami박사 전 오레곤대학 물리학 교수 Noetic Science 협회 연구원

"스스로를 인식하는 우주" "양자의 창조성" 의 저자

John Hagelin 박사 물리학 교수 마하리쉬 경영대학 연구원

CERN 연구원 SU5 통일장이론 발견자

과학계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우선 건강한 회의론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David 박사에게 감사합니다.

Stuart Hameroff 의학박사 마취심리학 교수 아리조나의학재단 연구원

문제는 사람들이

의식에 대해 판에 박힌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뇌는 마음이고 또 컴퓨터 같다고 하지만

그 증거도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Miceal Ledwith 박사 전 메이누스 대학 교수 국제 신학회 회원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이란.. 고마워요.

이게 바로 신의 간섭입니다.

하늘로부터요.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의 발을 가지고 있군요 ^^

Lynne McTaggart 저널리스트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필드"의 저자

Daniel Monti 의학박사 토마스 제퍼슨의대 심신상관 의학프로그램 연구원

Andrew Newberg 의학박사 팬실베니아 대학 영성과 신경과학협회

Candace pert 박사 전 뇌생리학과 신경과학재단 회장 펩타이드와 면역시스템 전문가

오우 불이 벌써 깜박거리고 있네요.

보이시죠? 제가 얘기할 땐 항상 이런 이상한 일이 생겨요.

좋아요.

괜찮아 이봐~

제가 잡고 있으면 괜찮아져요.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이제 됐습니다.

오우 괜찮은데 아마 하나님이 당신과 만나길 바라시나봐요. -안녕하세요.

딘 라딘 박사 Noetic 재단 교수 소노마 주립대학

"의식적인 우주"의 저자 관련 200여 개의 논문 공저자

이런 것들이 사실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을 가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80퍼센트입니다.

사람들이 생소한 것들에 회의적으로 되는 이유도

실제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실험실로 가져와보면

보통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제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분명히 마음과 관련된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람타 영적 지도자, 람타스쿨 설립자 채널러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위대한 생각의 주인입니다.

Jeffery Satinover 의학박사 하버드대학 교수 예일대학 물질연구 신학회 회원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첫째 다중인격장애에 대한 것과 둘째 왜 50세에 물리학자가 되신 건가요?

아.. 네 아마도 그건 다중인격장애 아닐까요?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저는 네 살 때부터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William Tiller 박사 스텐포드대학 명예교수

Fred Alan Wolf 박사 이론물리학박사, UCLA대학

국제강연가 의식과 물리학에 관한 다수의 책 저술 "양자도약" 저자

이성적인 통찰을 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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