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anguage subtitles for What The Bleep Do We Know의 2편 Down the rabbit ho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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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subtitles

< font color=yellow >자막제작 : 오삼아 봉라덴 wuzue21@empal.com

뉴스릴 필름이 알려드리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분쟁은 끝난 것일까요?

정신계와 과학계가 다시 결합하려고 하는 걸까요?

교회와 연구소가 의견일치를 본 걸까요?

길고 긴 혼돈의 시대를 지나

신에 대한 탐구와 우주에 대한 지식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걷게 되었습니다.

고대 수메르(유프라테스강 어귀의 옛지명) 시대에는 별을 관장하는 신(神)과

작물을 관장하는 신, 물을 관장하는 신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신전의 성직자들은 이러한 지식분야를 조사하는

율법학자였고 기술자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궁금해했고

원자이론과 천체운동 그리고 인간윤리에 관한 이론들을 발전시켰습니다.

중세 유럽에는

교회는 국왕을 옹립하고 땅을 소유하며 진리를 전파하는

절대권력의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모든 진리를 알고 있다고 정해버린 것입니다.

교리가 곧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발전을 계속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리에 도전장을 던지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 부르노, 갈릴레이는 모두 교회의 압력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비극은

더이상 과학을 억압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죠

교회와 과학은 신을 알려고 하는 노력과 신을 알려고 하는 노력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원주의를 고안해내었고

교회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루고

과학은 보이는 영역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유물론이 탄생합니다.

어려운 휴전상태였지만

과학자들은 교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반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환상이고 속임수이며

우리는 예측가능한 물질우주에서 엄격하고 변하지 않는 법칙의 지배를 받는

완벽한 기계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됩니다.

교회는 영혼이 없는 과학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밀쳐 내었습니다.

다윈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조주는 무의미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아무 의미가 없는 우주 안에서

오직 더 나은 종으로 진화하기 위해 DNA를 전달하며

무작위로 변종한다는 것이었죠

한편 과학과 종교는 모두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기계론적인 것이거나 혹은 신이 위대한 창조주라고 하더라도

우리 인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과학은 생명력 없는 우주를 더욱 깊게 파고 들어

우연히 신비의 영역을 만나 그 비밀을 풀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작은 모퉁이에서

과학자들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와

믿지 못할 정도의 신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신비는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물질우주는 본질적으로 물질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물질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과학계의 이단아들은 종교지도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과학과 정신의 만남을 추진하는 많은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기계적인 관점의 문이 열렸다면

21세기는 교회와 연구소사이의 단단한 벽이

허물어지는 시대가 될까요?

이상으로 뉴스릴 리포터였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신비의 문 속으로 깊이 그리고 더 멀리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본질에 대해 더 멀리 또 깊이 알고자 하는 것을 뜻합니다.

앨리스는 토끼굴로 들어가 매드 해터를 만납니다. (엘리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뜻함)

해터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 굴 속으로 들어간 후에 그곳으로부터 다시 빠져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과학에는 두 단계가 존재합니다.

신비의 문 속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부분과

또 다른 단계는 엄격하고 정밀한 과정에 대해

여러분의 그러한 생각의 무모함을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과학에 있어 흥미로운 점은,

물리학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정말 새롭고 신기한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물리학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실험을 통한 방법이

신의 계시나 명상 같은 것들이 취하는 방법과는 매우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전자 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실험결과에 근거해서 그들의 믿음을 바꾸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과학 사이에 혹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왜 이렇게 분명한 불화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원인이 아주 뿌리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원인이 신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죠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성경의 창세기 같은 책들은

실제로 세상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학자가 창세기가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창조의 시작에 대해 CNN뉴스같은 생생한 이야기가 창세기에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650년 아일랜드의 유명한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는

성경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며 계산을 한 끝에

스스로 만족하려고 한일이겠지만

세상이 창조된 것은 기원전 4004년 전이라는 것을

17세기 9월 어느 날 아침 아홉 시에 애써 계산해 내기도 했죠

정신적인 것들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까지 그렇게 설명해줄 만한 과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합당한 단 하나의 사실은

최초의 의식이나 이상적인 가치, 선, 진리 등은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선상에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모든 존재들과 크게는 우주까지 우리를 서로 연결해줄 것입니다.

What the bleep do we Know? Down the Rabbit hole

과학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과학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아주 쓸쓸한 것이죠

즉 우리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유전자에 의해

무작위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또 우리는 우주의 외부에

외롭고 동떨어진 존재이며

이 외로운 우주의 동떨어진 지구에서

말하자면 외로운 실수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알려줍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도 형성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분리의 관점이

아주 해로운 관점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분리의 관점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우리는 서서히 이러한 패러다임이 틀렸으며 우리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합쳐져 있습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요소에서부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와

그것이 나와 나의 삶에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영적 환경을 필요로 합니다.

인류라는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영적인 방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온갖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의 정당한 방식에 대비해서 보면

낡은 신화나 오래된 군주정치, 신과 같은 개념은

이미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사라질 필요가 있고 우리에겐 새로운 영역과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양자물리학이든 어떤 것이든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올라서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방향은

의학에서는 거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음... 의식이 실재적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란 사실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각을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뇌 안에서, 신경조직

관찰자의 본성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기억과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들,

그리고 어떻게 실질적인 경험이 만들어지고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종의 관찰자와 물질 간의 상호교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에 있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큰 의자나 트럭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불도우저나 로켓의 이륙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 사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뇌가 매초 무한한 정보를 처리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우리는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감각의 경험 속에 빠져버립니다.

현실이라는 감각 속에 빠져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소위 외부의 현실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도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걸러집니다.

뇌는 초당 4000억 개의 정보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은 단지 2000개 정도입니다.

이 말은 현실이 우리의 뇌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너도 한번 해봐

어떻게 내가 하고 있는 걸 아냐구?

도자기와 나는 하나야

그리고 네가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될거야

나는 내 눈으로 보고 일해

나는 현실을 다루는 거야

애매모호하고 이리저리 변하는 골치아픈 문제 같은 게 아니야

만일 실재한다면 그걸 보고 싶어

눈은 어떤 면에서는 캠코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은 단지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보들은 실제로 조합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세상의 의미에 관한 영화를 조합하려면

모든 것들을 실제로 조합하는 편집자의 책상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

갑자기 당연한 일들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보죠

내 눈에 이상이 없다는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침대 옆에 단단하게 보이는 마룻바닥도

실제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절벽이나 비슷한 다른 것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능성들을 다루지 못한다면

저는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저는 마비되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눈이 결과적으로

언제든지 나를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대해 들어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비록 그러한 경험이 없더라도

눈이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증명하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시각은 분명히 정확하지만

아침에 침대 밖으로 나오려는 결정을 할 때

침대 옆의 바닥을 보는 나의 시각에 맞추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양한 가설들로 설정하게 됩니다.

한가지 가정은 실제 바닥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정은

바닥이 있다는 것이 환상이며 그곳은 바닥이 아니라 절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침에 침대에서 나올 때도

다른 가정에 비해 하나의 가정이 맞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종종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질적인 현실이 되는 것이죠

뇌가 초당 4000억 개의 정보를 처리하고

우리가 그중에 단지 2,000개만을 인식한다면

현실은 뇌 안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뇌는 정보를 계속 받아들이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통합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습관의 틀을 벗어난 지식이나 정보를 대한다고 해도

예를 들어 양자물리학과 신경생리학의 지식을 합친다고 해도

뇌는 그 내용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곳의 가정과 가능성 그리고 잠재성을 조사하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경험에 우리의 지식을 결합시켜

그러한 절차를 계속 반복하게 되면

이때 뇌는 다른 두 개의 독립된 신경망을 통합시키게 됩니다.

새로운 비젼을 창조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새로운 비전은 섬광처럼 빛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우리의 몸에 관련된 정보와

주위의 환경과 시간에 관한 정보를

약간 더 넘어서서

2000여 개의 정보 중에서 섬광처럼 빛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어떤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진정한 이해라고 부르는 것이죠

괜찮아? 비명지르는 걸 들었는데.. 또 다른 꿈을 꾼거야?

네가 인디언이었는데...

수평선 위로 콜럼버스의 배가 생겨나는 걸 봤다..

그 주술사가 날 쳤어..

멋지다

혹시 전생이거나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이거나

아니면 미래를 보여준 걸 수도 있어

생생했어

아니면 그 꿈이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지도 몰라

그건 네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 같아

우울증 약을 바꿔보는 건 어때?

고맙지만 내 약엔 문제 없어!

옷 입으러 가야겠다.

아만다 기분이 좀 나아지면 좋겠다.

아만다 이 머저리 같은 것..

사람들은 제게 왜 양자물리학에서는

왜 그렇게 작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글쎄요.. 세 가지 가능한 정답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양자물리학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일을 하고 운전을 하고 그 밖의 일들을 하겠지요

두 번째 관점에서 보면 양자물리학은

세상의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특히 전자공학 분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물건을 스케닝하여 계산을 합니다.

그것은 양자물리학 덕분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논제이지만

왜 철학자들이 세상에 대한 가정을 해체하는데 그렇게 열정적일까요?

저는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그것을 고전물리학과 비교하면서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양자물리학과 고전물리학은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과

우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방식입니다.

고전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기계입니다.

그리고 기계는 의식적인 경험의 여지가 없죠

기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고 여러분이 기계를 없앨 수도 있습니다.

기계를 쓰레기장에 버리든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죠

만일 세상이 정말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양자물리학입니다.

세상은 태엽시계 같은 것이 아니며

훨씬 더 유기적이라는 것이죠

세상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어떤 형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것입니다.

이런 유기적인 환경에서는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고전적인 방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나 자신뿐 아니라 세상에게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가 관련되어있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이것이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입니다.

우선 아원자 세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한 후

그 아원자 세계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아원자 세계에 대해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것은 작은 실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정신나간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란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조그만 실험으로 극히 짧은 시간에 제한된 공간에서 큰 에너지를 발견해내려고 하죠

아원자의 영역에서는 그건 정말 정신나간 짓입니다.

그리고 아원자물리학은 그 영역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해 내려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양자물리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과학을 필요로 합니다.

양자물리학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관적인 가설들을 필요로 합니다.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 감정, 직관들이 관련되리라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개념적인 관점에서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이론을 이야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어떤 이론보다 합당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이론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일종의 긴장된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양자물리학의 토대를 조사하면서부터는

양자물리학을 정보의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양자물리학이 한편으로는

모순되고 혼란스러우며

개념적으로도 당황스러운 이론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던져버리거나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펼쳐진 물리학 시스템의 성질을 예측하는데

양자물리학은 검증된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매우 신기합니다 우주는 두 가지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세상 즉, 공간과 시간의 세계에서는

수백 년 전에 세워진

뉴튼의 운동법칙으로 물질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법칙은 당구공이나 대포알 중력 등과는 매우 잘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작은 단위로 내려가게 되면

예를 들어 원자의 단위로 내려가게 되면

또 다른 법칙이 지배합니다.

그것들이 양자의 법칙.. 양자이론, 양자물리학이죠

그 단계에서 입자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중첩"

시공간을 넘어 파동처럼 보이기도 하고

엄청난 거리로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파동작용에 지배를 받는

통일장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양자세계와 전통적인 세계 사이의

경계선과 출발점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파동의 기능이 가끔 붕괴됩니다.

왜냐하면, 양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중첩되어 존재하고 여러 곳에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세계에서 이러한 다수의 가능성들이

특정적이고 제한적인 선택에 의해 붕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하나의 특정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죠

양자물리학은 실재로는

정보의 흐름과 잠재적인 전자들의 흐름이고

가능성과 정보가 펼쳐짐과 응축입니다.

"잠재적"이란 단어가 중요합니다.

전자의 세계가 아니라 잠재적인 전자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로 파동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겠지요

파동의 장은 무엇일까요? 바다일까요?

아니오, 우주적인 바다입니다 순수한 잠재성의 바다입니다.

추상적이고 잠재적인 존재의 바다죠

우리는 그것을 "통일장" 혹은 "초끈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성하고 있고

모든 사물의 연계성은

현실이라는 바탕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의 발견자 중 하나인 쉬레딩거는

이러한 연결의 개념인 얽힘이

단지 양자물리학의 특성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양자물리학에서도 아주 이상한 특성이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경험에는 맞지 않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슛 한번 해보세요.

그러지 마시구요.

들어와서 게임해요.

봐요, 공도 좋아하잖아요 1:1 게임 하실래요?

게임을 해보신지 얼마나 됐죠?

어서요. 공 잡았으니까 슛 한번 해보세요

아뇨 아뇨 거기서 말구요

게임하시려면 코트로 들어오셔야죠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듀크의 코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프잖아 닿지도 않았어요

좋아 그리고 이건 단단하지도 않아요

공은 대부분 텅비어 있어요

우리는 학교에서 세상이 물질, 덩어리, 원자 등으로

만들어졌다고 배웠습니다.

원자는 다시 분자로 만들어져 있고 모든 것은 분자로 되어있죠

하지만 실제 원자의 대부분은 비어있습니다.

에를 들어 이 농구공이 원자핵이라면

수소원자를 예로 들면 수소원자의 전자는

이 원자핵 주위의

외부궤도를 도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거리는 대략 원자핵에서 약 32km 정도를 떨어져서 돌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사이는 비어있습니다.

사실 우주의 대부분은 비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 비어 있는 공간의 단위로 내려가게 되면

결국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곳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이런 우주의 미세한 기초단계에

정보와 패턴이 존재합니다.

이곳을 '프랭크스케일'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우주의 바탕이죠

그러한 단계에서는 빅뱅 이후의 모든 정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주의 대부분은 물질이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비어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대부분 진공이 비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의 일관된 이론에서 보면

진공 속에는 10의 94승과 맞먹는

양의 에너지가 존재하며

E=Mc^2 이론으로 보면

그 에너지의 양은 엄청난 것입니다. 실제로는 얼마나 되는 걸까요?

실제로 우주가 평평하다고 가정한다면

많은 천문학적인 정보로 볼 때

실제 우주가 평평한 것들이 비워져 있다고 보지만

그렇게 가정했을 때

크기가 10의 -23승 큐빅 센티미터 속에 있는

수소원자 속에 있는 진공의 에너지는

만일 그 진공 속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끄집어 낸다면

그 에너지의 양은

우주의 모든 별들과 행성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수조 배가 됩니다.

정말 엄청난 것이죠

만일 의식을 통해 그 소량의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면

빅뱅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NASA(미 항공우주국)와 영국우주국에서는

이 믿을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바다로 접근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접근한다면 다른 은하까지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빈 공간에 믿을 수 없는 에너지의 존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양자물리학이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심지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개념은

바로 이 숨겨진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만지거나 보이지도 않지만

이 존재로부터 모든 것들이 솟아올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실재의 영역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이 물리적 실재를 이해하려 하고

물질이 실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생명의 근본이 되는 핵심단위를 찾으려고 더 빈틈없이 들어가면 갈수록

삶과 우주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점점 더 추상적인 것과 마주치게 되고

순수하게 추상적인 영역에 이를 때까지 점점 더 추상적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통일장'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그것이 순수하고 추상적인 잠재성입니다.

순수하게 추상적인 존재..

순수하고 추상적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동의 파도 속에서 솟아올라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과

입자와 사람들을 창조해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

생각이나 개념, 정보들 입니다.

그리고 말했듯이 닿지도 않는답니다.

또 신기한 것은 물질은 서로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공을 튀기면 공의 원자와

땅바닥의 원자는 실제로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닿은 게 없는 거죠

자 가방 내려 놓으시구요 가방 들고 슛은 못하죠

그리고 여긴 제 코트니까 문제 될 게 없어요

슛 해보신지는 얼마나 됐죠? - 늦었어

물리학에서 알게 모르게 암시하고 있는 것은

시간을 절대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암시 같은 것이죠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우주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아닙니다.

신이 "1초, 1초, 1초..." 라고 말하지도 않고

"1미터, 1미터, 1미터.." 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중력의 장에 있고 여러분의 머리는 실제로

다리보다 아주 미세하지만 더 빨리 움직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사물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간의 방향이 시작되는 것이죠

하지만 양자와 미세한 세계에서는

열역학 제2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사물이 시간을 거슬러 갈 수도 있고 시간이 없는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의 기본적인 방정식은

역시간(逆時間) 대칭의 특징이 있습니다.

역시간 대칭이 의미하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것이고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즉, 이 법칙에 따르면

시간의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과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커피에 우유를 섞었듯이 커피에서 우유가 나올 수도 있고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이 더 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 모든 것에도 똑같은 식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과거에도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세상을 정신적으로 경험하는 방식과

심한 대립을 일으키고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틀린 것이 되어버립니다.

양자물리학이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해온 사실에도 불구하고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미래가 현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개념입니다.

우리는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공을 쥐고 있다가 그것을 놓으면 떨어지는 것이죠

원인이 있고 땅에 떨어지면 결과가 됩니다.

하지만 땅이 제가 공을 놓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시간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은 단지 의식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여러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뇌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투영하는 의식과 관련하여

뇌 안에서 그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신경학자인

밴 리빗이란 사람이 아주 중요한 실험을 했습니다.

리벳이 한 실험은 뇌에 이상이 있는 신경외적인 환자의 뇌를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의식이 있을 때 뇌를 노출시켜

두개골과 머리부분을 국소마취 하고

뇌로 접근했습니다. 환자들은 깨어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있었죠

예를 들어서 리빗이 한 실험은

손가락 끝을 자극한 후

그 손가락과 관련이 있는 반대편에 있는 감각지각 신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전기적으로 그것은 기록되었고

환자에게 손가락에 언제 자극을 느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또 반대로 뇌의 특정 감각신경을 자극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손가락에 자극을 주면

일정시간 안에 대뇌피질로 그 자극이 전달되어

아주 짧은 시간뒤에 환자가 그것을 느낀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리고 뇌를 바로 자극하면 환자가 즉시 그 자극을 느낀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손가락을 자극했을 때 환자는 그 자극을 즉시 느꼈고

뇌를 직접 자극하자 시간의 지연이 있었습니다.

리빗은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이 실험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결국 리빗은 뇌가 시간에 거슬러 올라가면서

정보를 투영시킨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뇌의 감각피질에 이르는데는 미세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뇌는 시간을 거슬러 그것을 투영시킵니다.

그래서 자극이 일어났을 때

의식적인 지각을 통해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손을 움직이거나

어떤 말을 하는 순간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지각하기 전에도

뇌의 어떤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한 뒤 내가 그 행동을 하기로 결심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그 행동을 한 뒤가 되버리죠

- 늦었어 -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요

왜 그러시죠? 기억하세요. 공은 비어있어요

넌 이딴 걸 어떻게 아는 거니?

저는 양자물리학 만화를 읽어요

사람들은 애들 만화라고 하지만 전 이게 진실이란 걸 알아요

그래서 제가 코트 위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것이 실제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이고 있답니다.

그럼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궁금해지겠지요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현실은 단지 정보의 흐름에 불과합니다.

그걸 믿냐구요? 음.. 그러길 바래요

아이쿠!

그래서 제가 코트 위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거죠

그래요, 전 언제나 궁금해하는 소년을 먼저 선택하죠

박사님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바라보는 매 순간 끝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죠

양자물리학의 불가사의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더블 슬릿 실험입니다.

이 실험을 이해하려면, 우선

물질의 작은 소립자 혹은 구(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만일 구슬 같은 작은 물체를 무작위로 화면으로 쏜다면

그 구슬들이 틈을 통과하여 벽에 맞아 만드는 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슬릿을 하나 더 더해보죠

그러면 그 옆에 같은 모양의 막대무늬를 볼 수 있겠죠

자 그럼 파동을 살펴봅시다.

파동은 슬릿을 통과한 후 방사상으로 퍼져 나가서

벽을 가장 세게 도달하는 것은

슬릿을 직접 통과한 선이 되겠지요

화면에 있는 선의 밝기는 그 강도를 나타냅니다.

여기까지는 구슬로 실험했을 때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슬릿을 하나 더 더하면

다른 일이 일어나지요

만일 하나의 파동의 꼭대기가 또 다른 파동의 바닥과 만나면

파동들은 서로 상쇄됩니다.

그래서 벽에는 간섭무늬가 생기게 되죠

파동의 꼭대기가 만나는 곳이 가장 강도가 센 곳- 가장 밝은 선을 띱니다.

상쇄된 곳은 아무런 무늬도 생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을 두 개의 슬릿을 향해 던지면

이런 무늬 즉,

맞은 부분의 띠가 생기고

파동을 통과시키면 많은 띠를 가진

간섭무늬가 생깁니다.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양자의 세계로 가볼까요?

전자는 아주 아주 작은 물질입니다.

마치 작은 구슬 같은 것이죠

하나의 슬릿으로 전자들을 발사시키면

우리가 구슬로 했던 실험과 같이 하나의 띠가 생깁니다.

만일 이 작은 조각들을 두 개의 슬릿을 향해 쏜다면

구슬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띠가 생기겠죠?

뭐라구요? 간섭무늬가 생겼습니다.

물질의 작은 단위인 전자를 통과시켰는데

작은 구슬에 의해 생긴 무늬가 아니라

파동과 같은 무늬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어떻게 작은 물질의 조각이

파동과 같이 간섭무늬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영리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작은 입자들이 서로 간섭하여

그러한 무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한번에 하나씩 전자를 쏘기로 합니다.

서로 간섭할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죠

하지만 한 시간 후에 똑같은 간섭무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작은 전자가 입자의 형태로 떠난뒤

파동으로 전위되어

두 개의 슬릿을 통과한 후

스스로 간섭을 일으킨 후

입자처럼 벽에 부딪힌 것이죠

하지만 수학적으로 그것은 더욱 이상합니다.

입자는 동시에 두 슬릿을 통과하기도 하고 어느것도 통과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둘 중 하나만 통과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만 통과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가능성이 입자가 여러 곳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 결과에 완전히 당황해서

입자가 실제 어떤 슬릿을 통과하는지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슬릿에 관측장치를 놓고

입자가 통과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습니다.

관찰할 때 전자는 입자와 같이 움직였습니다.

여러 개의 간섭무늬가 아니라

두 개의 띠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느 쪽을 통과하는지 알기 위한

바로 그 관측, 관찰장치가

두 개의 입자가 아닌 하나의 입자를 통과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자가 스스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려고 결정한 것이죠

물리학자들은 여기서 전에는 없었던 양자의 신비로운 세계로

한 발 더 들어가게 됩니다.

물질은 무엇이고 입자와 파동은 무엇일까?

파동은 무엇이 움직이는 것일까?

이러한 것들과 관찰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관찰자가 단지 관찰함으로써

파동의 기능이 붕괴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관찰자입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일어나는 일들과 스스로를 너무 동일시시켜서

관찰자의 측면을 잊어버린곤 합니다.

이것이 물질주의자들이 길을 잃고

관찰자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죠

물리학적 자료를 통해 우리는

물질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우리가 '외부'라고 부르는 것들을 단순화시켜놓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원자와 아원자의 입자

혹은 어떤 형태의 원자와 아원자의 물질도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고

조사하기로 한 순간

외부에서 우리가 관찰한 특징이 변해버립니다.

관찰자란 무엇일까요?

너무나 복잡한 양자의 혼란스럽고

신비한 세계와 그 반응들을 이해하는 그것

그것이 관찰자일까요?

양자의 영역에 이르러

그것을 층층히 밝혀낸 과학자들의 관찰이 없이는

양자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모든 것들이 관찰자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결론적으로

그 영역에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모든 것이 관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 영역을 또 다른 각도에서

수학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물리학의 영역에서

우리 스스로를 세상의 관찰자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물리학 체계의 또다른 부분의 관찰자로서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관찰자 역할을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전통적으로 공식화된 단 하나의 방법은

관찰자를 우리가 이야기하는 체계의 외부에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온갖 종류의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지죠

"그 책은 양자물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이야"

"그리고 난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있고"

"하지만 그 문장의 두 번째 부분은 분석하려고 하지마"

"왜냐하면 양자물리학에 적용시키면 그것은 분해돼버릴지도 모르니까"

이것이 물리학체계의 발전에 두 가지 독립된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는 그것을 관찰하지 않을 때 적용되는 것이고

하나는 관찰할 때 적용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것을 수학기호화하거나

수학공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다.

의식적인 관찰자가 정답을 끄집어내는 바로 그 행위를 보고

"관측기구로, 그것을 기록했다"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고 테잎에 기록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그것은 방정식의 한 부분을 빠뜨려버린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 테입을 보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그 테입을 보기 전까지는 거기에는 아무것도 기록된 것이 없는 것이죠

관찰하지 않을 때는 가능성의 파동으로 존재하고

관찰하게 되면 경험의 입자로 변해버립니다.

우리가 단단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입자는

실재로는 소위 "중첩"되어 존재합니다.

가능한 위치의 파동으로 퍼져있는 것이죠

모든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조사하는 순간

가능한 위치에서 하나의 위치로 고정됩니다.

운동의 방정식이 예측하는 범위에서

파동의 기능, 즉 농구공의 초입자성이

농구장 위에 균일하게 퍼져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만

여전히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양자물리학의 법칙에 따르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위치에 있게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농구공의 위치를 물어 볼 때도 그렇게 되어버리죠

즉, 양자물리학에서는

초입자성으로 농구장의 퍼져 있는

농구공의 위치를 묻는 것은

5라는 숫자의 결혼상태를 물어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이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5라는 숫자가 결혼했는지 총각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런 질문이 처음부터 부적당한 것입니다.

숫자 5가 결혼상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어 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셈이죠

이와 비슷하게 농구장 위에 파동이 균일하게 퍼져있는 농구공도

분명히 물어볼 수 있는 위치가 없는 것입니다.

쉬레딩거의 방정식이 특정 환경에서 그 위치를 예측하고

실험실에서 그런 환경을 재구성한다고 해도

농구공은 그런 상태로 가야만 하지만

결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위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측정의 문제에서 어려운 문제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 대해서도 분별 있는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우리는 농구공이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고 또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보게 됩니다.

농구공을 과학적 허구의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특정위치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농구공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실제 어떻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특정 위치에서 항상 그것을 본다는 사실이

전자의 운동방정식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거기서 측정의 문제가 나오게 되는 것이죠

관찰할 때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웅은 세상이 우리가 선택할 때까지는

가능한 조각들로 존재한다는 중첩을 알고 있어요

영웅은 원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한다든지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하나를 선택해 다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기도 하죠

질문 하나 할게요 신비의 문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실 거에요?

여러분의 마음이 무의식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창조해냅니다.

가능성들이 중첩되어 여러분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것이죠

이 말은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자각할 수도 있지만

잠시 후엔 하나하나가 서로 무너져 내리는

다양한 가능성이 서로 중첩되어 존재합니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거나 생각에 앞서 생각을 향하는 것....

멋진 샷이네요

하지만, 이 이상하고도 불가사의한 양자의 세계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동조(비국소성)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 즉 시간의 개념을 깨뜨리고

공간에 대한 개념 역시도 무너져 버립니다.

두 개의 사물 즉, 같이 만들어진 두 개의 전자는 서로 동조합니다.

하나를 우주 밖으로 보내보죠

그리고 나머지 하나에 자극을 주면

다른 하나는 즉시 반응합니다.

즉시

그래서 정보가 무한한 속도로 전달되거나

아니면 실제로 그것들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서로 동조하는 것입니다.

빅뱅의 순간 이후부터

모든 것들은 서로 동조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여전히 접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단지 물질이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구성개념입니다.

우리가 아직 신비의 문 속으로 충분히 멀리 들어오지 않은 걸까요?

미국에는 수많은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 충분히 볼 수 있는 사물들도

두 개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사물을 사진으로 찍어

과학자들에게 보여주더라도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여기 색깔이 멋있네

여기도 있고 저기도 두 가지 무늬가 있군

그게 뭐 대수야?

중첩은 미리 검출해내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나중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보통의 환경에서

독립된 사물이 일단 탐지되면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물질이 두 개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로는 3000개 이상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존재합니다.

우선 이 물질들은

보스-아인쉬타인 응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물질들은 하나의 파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입자라는 뜻이죠

그것이 하나의 파동의 작용이라 하더라도

그 파동은 다양한 위치를 보입니다.

여러분은 구멍 속에서 두 개의 사물이 보인다고 하지만 그것은 두 개의 사물이 아닙니다.

하나의 입자입니다. 하나의 입자가 두 장소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루기 힘든 부분이 그것이 여전히 하나의 파동이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3000개의 동떨어진 파동작용이 아니라

하나의 파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입자입니다.

사람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한다거나

과학자들이 헷갈려한다는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너무 신비로워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입자가

3000개의 독립된 장소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중에 하나의 무게를 재면

무게는 1/3000이 되는 것인가요?

글쎄요. 그중 하나만 뽑아서 무게를 잴 수 없습니다. - 왜 그렇죠?

그것은 하나의 입자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음..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입자입니다.

하지만, 그 입자는 각각 독립된 장소에 존재합니다.

그중에 하나의 크기도 잴 수 없나요? - 없습니다. 그 입자는 나눌 수 없습니다.

이 점이 여러분이 다루기 힘든 개념적인 부분이죠

3000개의 분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비록 그렇게 보여도 그렇다는 것이죠? - 맞습니다.

사실 실제로는 3000개까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단순하게 둘, 혹은 서너 개의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등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공간에 떠있는 작은 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물의 각기 다른 부분입니다.

그것은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네 개나 여섯 개의 독립된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파동이 움직임이고, 하나의 사물입니다.

정말 골때리지 않나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또 저기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분명히 하나, 둘, 세 개입니다" 라고 하겠지만

여러분은 다른 것들로부터 하나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떼어 놓으려고 하면

모든 것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립니다.

스타트랙 같은 영화를 보면

"Beam me up, Scotty." (공간이동을 할 때 쓰는 말)

그런 종류의 말이 나오지만 그게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여기서 하나의 물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설프게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어떤 일 때문에 화를 내고 점심을 먹고

마치 겉으로는 놀라운 어떤 일도 없는 듯이

집에 가고 또 삶을 영위합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지만

그렇게 사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 놀라운 마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스튜디오는 사람들로 꽉 찼는데..

맙소사..

사진기사가 없네?

어디에 있는 걸까?

외계인 찍으러? 내시호의 괴물 찍으러 가셨나?

아니면 뜨거운 데이트 중이신가?

이런 두 개의 블랙박스를 준비합니다.

내부는 다이오드나 발진기 EPROM

저항기나 용량기 같은

아주 간단한 전기회로가 있죠

기본적으로 그렇습니다.

하나의 박스를 알루미늄 호일로 싸서

전기가 흐르는 패러데이 상자 안에 넣어둡니다.

다른 하나는 충분히 검증되고 내면을 스스로 충분히 다루는

4명의 명상가에 둘러싸인

책상 위에 놓아둡니다.

명상가들이 깊은 명상상태에 들어가

주위 환경을 정결하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절차와 명상가들의 의도에 의해

그 장소를 성소(聖所)로 만드는 것이죠

그중 한 명이 이 장치에 대해 특정한 의도를 이야기합니다.

그 의도라는 것은 특정 목표의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정제수의 ph농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죠

이러한 장치를 이용해서 많은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명상은 네 명의 명상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약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각 명상가들은 추가적으로

장치에 그들의 의도를 심었습니다.

이 장치 중 하나를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가벼운 포장을 한 다음 택배포장을 하여

2000마일이 떨어진 미네소타의 실험실로 보냈습니다.

그 장치는 그곳에 도착한 후

전자장치가 된 패러데이 상자에 넣어졌습니다.

다음날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계속하였습니다.

실험은 기본적으로 계속되었고

장치 중 하나를 꺼내

15 센티에서 30 센티 간격을 두고 실험장치 옆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일정기간 그것을 켜놓았습니다.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치

즉 의도가 심어진 전자장치로 불리는 것들은

계속 사용을 하게 되면

공간을 일정기간 평형상태로

조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장치가 작동을 해서

일반 PH수치보다 더 높이 올라가거나

그러한 의도가 심어진 곳은 PH수치가 떨어졌습니다.

일정수치의 PH수치를 넘어서면 여러분은 사망하게 됩니다.

이 말은 이러한 실험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REG 즉, 무작위 추출기계는 전기적으로 동전을 던집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발생시켜

나온 숫자를 계속 기록하는 것입니다.

수백 번 혹은 1960년대부터 40년 이상 계속된 기계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작동되어 무작위로 나온 정보를 만들어낼 뿐이죠

동전 던지기처럼 0과 1만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에게 버튼을 누르게 한다고 하면

그 기계는 200비트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0보다 1이 더 나오도록 이야기를 하고

글자 그대로 온몸을 써서

수백 번의 실험을 계속하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죠

'그 사람이 0이 나오는 것보다 1을 더 나오게 한게

과연 영향력이 있을까?'라고 말이죠

전체적인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영향을 미칩니다.

어쨌든 그런 의도는

무작위 추출 기계의 실험결과와 연관이 있습니다.

1이 더 많이 나오도록 바라면

기계는 1이 더 많이 나옵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에도

완전히 임의적이고 무작위의 과정에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O.J 심슨의 재판이 계속되고 있을 때

TV에서는 관련된 법정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TV를 시청했습니다.

그 드라마의 영향력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라딘박사는 동시에 많은 의도가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 드라마를 분석하는 다수의 심리학자들을 고용해서

무작위 추출기계의 반응을 동시에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라딘박사는

법정에서 의도들이 강해질 때마다

그 무작위 추출기계가

무작위성에서 아주 많이 벗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 사람들이 스스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우리 각 개인 모두가 우리가 보는 현실에 영향을 미칩니다.

설사 그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희생자가 되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어디 있는지만 말해 줘

좋아 서둘러서 와

여기 손님들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어 - 10분만요

일본의 마사루 이모토 박사의

지하철 전시회입니다

이모토 박사는

물의 분자구조와 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은 4대 원소 중에 수용성이 가장 뛰어나죠

이모토 박사는 물이 비물리적인 현상에 반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실험계획을 세우고 물에 정신적인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암시야 현미경으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하나의 샘플에 각각 5cc의 물을 떨어뜨려

각각 50개의 샘플접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50개의 접시를

영하 25도에서 세 시간에 걸쳐 냉동시킨 후 꺼내어

영하 5도의 냉장고에 넣고

카메라 장치가 되어 있는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어 50개의 개별적인 사진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정보도 없는 사진이었죠

그리고 정보를 제공한 후

위와 같은 절차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보제공 전의 사진과 나중의 사진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느낌이나 물에 대한 감사함을 물에 투영하자

물은 아주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종종 저는 물이 평화로운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사진은 후지와라 댐의 물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선승의 축복을 받은 후의 똑같은 물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들은

이모토 박사가 글자를 출력해서

증류된 물의 병 외부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밤새 놔두었죠

첫 번째 사진은 원래 물 그대로의

순수 증류수의 사진이고

다음 이어지는 사진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죠

"사랑의 기"란 글자를 붙인 물

이것은 "고마워"라는 글자를 붙인 물입니다.

여기 아래보면 이 물병에 붙인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어를 아신다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일본어로 '아리가토'라고 써있음)

이모토 박사는 생각이나 의도가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어떻게 분자구조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물의 분자구조에 한해서죠

우리 몸의 90%가 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매혹적인 이야기죠

놀랍지 않나요?

만일 생각이 물에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면

생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무작위 추출 기계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험 중 하나는

그 결과가 시간을 초월해서도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프린스톤대학의 연구원들과 몇몇 다른 연구원들이

이미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도

여러분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의 화면대신에

기계화된 상황 즉, 오디오 테입을 준비했습니다.

그 테입들은 왼쪽과 오른쪽이

무작위로 기록되는 기계였죠

아무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그 무작위로 테입에 녹음을 시켰습니다.

이미 기록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것을 금고에 보관한 뒤 또 다른 기록된 테입을 건내주면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습니다.

즉, 이 테잎을 집에 가지고 가서 들어보되

왼쪽의 소리가 오른쪽의 소리보다 더 많이 들리도록

실험자들이 그 테입에 의도를 전달하라는 것이었죠

실험자들은 지시대로 했고 그 테입은 다시 회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금고 속의 보관한 테입역시도

똑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두 개 모두가 오른쪽보다 왼쪽의 소리가 더 많아진 것이었죠

도대체 어떻게 된것일까요

실험참가자가 실제 테입을 듣는 순간

그 테입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생각이나 주의력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결과가 만들어진 순간까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인 방식으로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주위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것이든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제 삶을 예로 들어보자면

삶 속에서 기쁨이나 행복 성취감이 부족한 이유는

정확히 이러한 것들에 대한 나의 촛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희생자라면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내가 희생자라고 여기고 있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계속해서 불행과 사고들과 비극과 마주친다면

아마도 그것은 나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인생이 그렇다고 받아들이는데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일반사람들은 그들의 주의력을 분당 6초에서 10초까지 잃습니다.

원하는 것에 집중을 하고 싶다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고대 신비주의의 가르침에서

사람들에게 불꽃에, 실제로는 성냥불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걸 통해서 여러분의 주의력이

아주 명확한 방향으로 일어나게 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결국 에너지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우주가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피상적인 것에서부터 심원한 것까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일반적인 생각의 단계인 피상적인 곳에서 사용한다면

그 힘은 아주 제한될 것입니다.

손을 이용하지 않고는 테이블 위의 먼지 하나도

옮기지 못하겠죠

의식이 약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의식은 우주까지도 창조해냅니다.

우리가 손길 하나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고 손에서 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항상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를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그 정답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결코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 정답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규정하는 습관들과

대립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의 감정적이고 습관적인 필요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결코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사진찍는 거 어땠어?

엿 같았어.

사장이 전화해서 너 걱정 하더라

아만다, 내가 여기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도 내가 좀 너무하다는 걸 알아

밥하고 헤어진 뒤 더 힘들었지만

음 그래도 넌 너무 잘해줬어.

내 말은 엉망으로 만들고... 나중에 청소하긴 하지만, 그게 네 스타일은 아니잖아

가끔은 너 때문에 내가 제정신이 드는 것 같아 - 내가?

내가 어떤 사람 정신차리게 하면 그 사람들은 문제 생기는데..

아무튼...

고맙다는 표시로 선물을 준비했어.

열어봐.

너 사진 중에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봤어.

너무 좋은 게 많아서 고르려니까 한정 없더라.

이건..

앞으로 찍을 멋진 사진들을 위해 남겨둔거야.

이상한 하루였어.

-고마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일 생각이 물에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면

생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생각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를 생각...

생각의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이것은 내가 꾸는 꿈입니다.

마치 꿈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여러분 앞으로 다가와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처럼

당신이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꿈의 단계로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뒤로도 앞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 시간을 거슬러 간 것이죠

- 시간의 앞으로 가면... -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 정보는... - 역시간 대칭....

-물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서도 시간을 앞질러서도 갈 수 있습니다.

양자장에서는 모든 현실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일까요?

- 경험의 실제 결과는...

- 글자 그대로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거시적인 세계도 존재하고

세포의 세계도 존재합니다 원자와 핵의 세계도 존재합니다.

이 세계들은 각자 모두 다른 세계입니다.

그 세계들은 나름의 언어와 수학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작은 세계가 아니라 각자가 모두 다른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 세계들은 서로 보충해줍니다 왜냐하면, 저는 원자이기도 하고

세포이기도 하며 눈으로 보이는 생리학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진실이고 단지 다른 단계의 진실일 뿐입니다.

과학과 철학에 의해 밝혀진 가장 깊은 진실은..

단일성이라는 기초적인 진실입니다.

현실의 가장 깊은 소립자적 단계에서는

여러분과 저는 글자 그대로 하나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여기에 "동조"라는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아인쉬타인은 양자물리학이 옳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기에는 멀리서라도 보이지 않는 힘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인쉬타인이 의미한 것은 일상적인 감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라는 것이 공간 속에서 두 개의 장소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그 둘은 갈라져서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분명하게 볼 수 없는 어떤 깊은 단계에서는

공간 속의 두 개의 장소는 같은 것입니다.

그것들은 함께 위치하고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가 상식이라는 것이

글자 그대로 감각을 통해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느끼는 것이라면

그리고 세상이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영혼이나 신비에 관한 경험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영혼이나 신비경험에 관한 모든 관점은

여러분의 머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시간이나 공간의 어딘가에 있는 일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이 던져주는 관점은

이러한 신기한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대를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양자물리학은 나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그것이 어떤 신호나 힘 혹은 다른 것이든

다소 신비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또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통해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멀리 떨어진 사람과 텔레파시를 통해 느낀다면

그것은 제가 뛰어나가 그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어떤 깊은 차원에서 보면

저의 뇌와 그 사람의 뇌가 함께 같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할 때 우리는 항상 동조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아주 충격적인 것이죠

제가 여러분과 동조하게 되면

제가 글자 그대로 여러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원거리 투시 실험도 가능합니다.

여기서도 그런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후레쉬 불빛을 보고

뇌의 잠재적인 부분은 그 불빛의 특징을 포착합니다.

"환기능력" (evoke potential)이라고 하죠

그 신호는 뇌와 연결된 EEG 장치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불빛 없이 앉아 있고

여러분들을 볼 수 없다 해도

뇌의 잠재적인 부분은 여러분과 함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에 의해서

저는 여러분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지가 제게 동시에

비슷한 뇌의 잠재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실험은 멕시코 대학의 Jacobo Grinberg가 처음으로 했고

지금은 런던의 Peter Fenwick에 의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 일어나는 일들은 시작점이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생각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식적으로 창조합니다.

가끔은

제 마음이 일어났으면 하는 모든 것들을 검토하기 때문에

제가 의도적으로 하루를 창조하는데 있어

조용히 요점에 이르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리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루를 창조할 때

아무 곳에서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는 그런 것들 역시 나의 창조의 결과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압니다.

점점 더 그렇게 알아갈수록 제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더 많은 신경망들이 저의 뇌에 만들어지죠

이런 훈련은 다음날에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자극을 줍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찰자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모두 각자의 현실의 관찰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별적인 의식들은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해냅니다.

물리학자 아들인 에반은 현실이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어떤 현실을 점유하고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현실을 점유한다면

예를 들어, 오늘 오후에 열리는 수퍼볼 게임에서

이클스 팀이 점유한 현실과

페이트리어팀이 점유한 현실은 서로 다른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현실들 중 하나가 실제 현실이 되겠지요

그래서 부가적이고 간섭적인 패턴이 존재합니다.

양자물리학을 계속 연구하고

우리의 의견이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단순한 사실도 이해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놓고 본다면 사람들이 관찰의 기술을 연습하기 위해

힘을 쏟을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의 관찰에 대응하는 아원자 세계를 보죠

하지만, 보통사람은 분당 6초에서 10초마다

집중하는 시간을 놓칩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시간의 여지가 그다지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심과 집중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반응들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어설픈 관찰자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관찰의 기술을 아직 마스터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죠

관찰은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부의 세계에 너무 빠져 있어서

외부세계의 반응이나 자극에 너무 빠져 있어서

뇌가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

반응의 영역에만 움직이는지도 모르죠

우리에게 알맞은 지식과 이해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알맞은 훈련이 주어진다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신호들을 돌아보기 시작할 것이고

조용히 앉아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그러한 노력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원사가 씨앗을 돌보듯

매일 그것을 유지한다면 그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차원의 실험실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고 그 실험실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며 그 상상한 것을 창조해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이 말은

의식적으로 충분히 집중하는 여러분의 의지가 이러한 것들이 물질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식이란 무엇일까요? -의식은 무엇일까요?

의식이라는 것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의식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의식을 설명하려고 해왔고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발견해내고

인간인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왜 우리가 의식을 가지는지를 알고싶어합니다.

의식을 정의하는 간단한 방법은 의식이 알아채고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죠

특히 자신을 알아채는 것을 뜻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인간으로써 자기 인식을 하고 있고

거울을 보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술에 매여 있는 광신종교보다

의식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는데 있어

과학이 의식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 양자물리학 뿐 아니라

물리학의 방정식에서는 의식이 제외됩니다.

간단한 이유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간편하기 때문입니다.

난 결혼식이 싫어

결혼식이요?

프랭크 나 좀 봐요

중요하게 보면 이 일은 중요한 일이야

뭘 봐요?

그 사람들 결혼인데요

내 말은 아만다가 과거에 살고 있다는 거야

모든 게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들이잖아

교회도 싫어하고 결혼식도 싫어하고 남자도 싫어하잖아

의식이라는 것을 정의하는데는 아주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의식은 조밀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온

정신의 부산물입니다.

"우리가 과연 신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길고 긴 성장의 여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신을 흰 수염을 하고 인간을 위에서 바라보는

위대한 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지구의 삶이 일정기간 신에 의해 주어진

일종의 시험장소라고 생각하고

신이 위에서 무릎 위에 조그만 컴퓨터를 놓고

신의 뜻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지

혹은 우리가 신을 모독하는지

기록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정말 터무니 없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이 믿는 형태의 신을

모독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그것이 신에게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어떻게 신이

그 모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영원한 벌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런 개념들은 이상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은

많은 두려움과 한계와 불안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이러한 불안 위에서 필사적으로 믿든 그렇지 않든

종교가 효과적으로 퍼지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들은 끝없는 형벌이라는 대단한 문장에

쉽게 위협을 느끼고 기꺼이 그 말에 빠져버립니다.

십계명 속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마음이 만들져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돌보는데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꿈은 꾸어보지도 못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근본적인 음모일 수도 있겠지요

비록 어떤 사람이 종교의 예복을

오래전에 던져버렸다고 해도

여전히 종교적인 틀 안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움직이는 모든 개념은

종교에 의해 형성된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그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전에는

발전된 관점조차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조직화된 종교들의 문제들 중 하나는

개신교만이 좋다거나

혹은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만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고 하는

분리의 감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양자물리학에서 이해하는 우리의 이해는

완전한 하나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의식상태에서 우리의 영성(靈性)을 끌어내야 합니다.

왜 나는 항상 분리를 느낀다고 묻는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영혼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구름 속에 흰 수염을 하고

판단하고 지켜보고 벌주고 보상하거나 명령하는 나이든 사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단 그 궤도에 올라서게 되면

여러분은 영적인 진화나 개발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가게 됩니다.

성장을 원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

그들을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나의 믿음을 예수님께 맡기기만 하면

죄로부터 나를 구해주고

나를 보살피고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이죠

하지만, 에수님은 나를 대신해서 점심을 먹을 수도 없고

나를 대신해서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나를 구원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구원을 받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종교에 집착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실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위대함을 깍아내리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 울타리를 열고

신을 영원하고 절대적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법칙은

시리우스나 장미우주 혹은 R우주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법칙입니다.

허블망원경이 마침내

우리의 가슴과 마음에

무한한 아름다움을 가진 은하를 발견해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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